김기춘 선생님. 다들 김 선생님을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부르지만 너무나 큰 가르침을 주셨기에 선생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청문회에서 김 선생님이 보여주신 의연하고도 대쪽 같은 자세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미 1992년 부산 복국집에서 김영삼 대선 후보를 당선시키려면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한다는 작전을 했던 것이 탄로 났을 때부터 김 선생님 실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도 그때 나온 말이라고 했지요. 남아(男兒) 일언(一言)이 우리끼리만 중천금(重千金)임을 줄기차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병우 선생님. 저는 우 선생님과 동갑이지만 우 선생님은 제가 학교 앞에서 C와 D로 점철된 성적표를 놓고 막걸리 마시면서 시시한 이야기를 떠들 때 이미 사법시험에 합격한 분이라서 선생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번 청문회에서 보여준 우 선생님 모습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아직 청문회는커녕 검찰 조사를 받은 적도 없지만, 앞으로 혹시 잘못을 저질러 검찰청에 가게 되면 우 선생님처럼 "모릅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장땡이고 적어도 파투를 내거나 남한테 독박 씌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랜 세월 그렇게 변명하는 피의자들을 보면서 배운 이른바 '을(乙)에게서 배운다' 자세도 정말 놀랍습니다. 다만 그 철(鐵)의 낯가죽(面皮)은 감히 본받을 수 없으니 성형외과에 '철분 주사' 같은 게 있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최순실 선생님. 선생님이야말로 모든 선생들의 선생님입니다. 모른다고 하지 않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고 그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고만 말씀하셨지요. "죽을죄를 지었는데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은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최고의 아방가르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젯밤 꿈에 염라대왕 앞에 갔다. 뭘 잘못했기에 염라대왕 앞에 왔나 어리둥절한데 불호령이 떨어졌다. "네놈은 2016년에 한국에서 뭘 했느냐?" 얼떨결에 대답했다. "2016년이라면… 저는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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