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각본집
정서경·박찬욱 지음|그책|친절한 금자씨:120쪽, 싸이보그지만 괜찮아:116쪽, 박쥐:124쪽|각 1만1000원
“기적이 꼭 인간의 기준으로 아름답고 선한 형태로 찾아오는 건 아닙니다. 뱀파이어면 어때, 장님 눈 띄워주는 게 기적이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피를 좀 나눠주세요.”-‘박쥐 각본' 중에서
‘친절한 금자씨’를 시작으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의 각본을 공동 집필한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함께 작업한 각본을 책으로 엮어냈다. 하나의 하드에 두 대의 모니터, 두 대의 키보드를 두고 함께 썼다는 이 각본들 속에는 긴 시간 동안 공동 작업을 펼쳐온 두 작가의 역사까지 함께 녹아있다.
각본집으로 출간된 세 편의 영화는 박찬욱 감독뿐만 아니라 정서경 작가의 세계관까지 흡수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정서경 작가는 여성 캐릭터의 활약을 꾀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세계를 더욱 확장시켰다.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영군, ‘박쥐’의 태주 등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 ‘여성’은 점차 비중을 늘리며 적극적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너나 잘하세요”라는 대사를 유행시키며 312만 관객을 동원한 배우 이영애는 천사와 여전사를 오가는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각본집 속에는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스쳐 보냈던 장면들에 대한 해답과 ‘이금자’라는 캐릭터의 내면 세계가 농밀하게 담겨있다. 독자는 각본과 영화를 견주어 보며, 영화 속 세계를 더욱 깊숙이 탐구할 수 있게 된다.
각본을 읽으며 독자는 저마다의 속도로 영화를 다시 읽고 이해할 기회를 얻는다. 각본집을 통해 ‘소설 읽기’에 버금가는 ‘각본 읽기’만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시문과 해설, 신(Scene)과 신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호흡이 부과되는 과정, 문자와 여백을 읽으며 이미지를 상상하는 과정 등을 통해 독자는 좀 더 느린 속도로 영화를 새로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