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산책길에 음악이 깔리니까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25일 세종시 중앙호수공원을 찾은 김정현(32·세종시 한솔동)씨는 "퇴근 후 아내와 호수공원을 자주 찾는다"면서 "밝은 LED 가로등에 노래까지 흘러나오니 밤에도 산책하는 사람이 많아져 무섭지 않다"고 말했다. 세종시는 매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중앙호수공원에 음악을 튼다. 재즈와 클래식, 가요 등 여러 장르 음악을 반복 재생한다. 스피커는 호수공원과 인근 하천 산책로에 100여m 간격으로 50개가 설치돼 있다.
◇세종시, 도시 설계부터 '셉티드'
이런 음악 서비스는 범죄 예방과도 관련이 있다. 세종시는 2006년 9월 행복도시 지구 단위 계획을 수립할 때부터 '셉티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를 적용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주민들의 눈으로 범죄를 감시할 수 있도록 도시를 설계하는 것이 범죄 발생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세종시는 '시야 확보'를 지구 단위 계획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일반 건물을 지을 땐 1~2층 창문이 가리지 않도록 조경수를 심는다. 상가 건물 전면부 투명유리 설치 비율과 건물 지하 주차장 조명 밝기도 기준을 설정해 어두운 구역을 최소화한다. 유동 인구를 늘려 자연스럽게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유도한 곳도 있다. 한솔동주민센터 옆 교각(생태통로) 아래엔 매월 2차례 주민들이 참여하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 도시특화경관팀 신제욱 서기관은 "범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주민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CCTV만으로는 범죄 예방 한계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전국에 설치한 CCTV는 2015년 기준 73만9232대에 달한다. 2010년 30만9227대보다 배 이상 늘었다. 민간에서 설치한 CCTV까지 합치면 국내에는 795만여대(한국정보화진흥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차량용 블랙박스까지 대중화됐다. 수도권 주민 1명이 하루 평균 CCTV에 노출되는 횟수가 83회라는 조사도 있다. 전국 지자체는 방범, 불법 주정차 단속, 차량 번호 인식 등 모든 용도의 CCTV를 24시간 한곳에서 살펴보는 통합관제센터를 두고 있다. 전문 요원들이 CCTV를 실시간으로 살펴보다 범죄 등 사건이나 문제가 생기면 경찰에 신고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방식으로 작년에만 1만1358건 사건을 해결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 2015년까지 5대 강력범죄 발생(살인·강도·성범죄·절도·폭력)은 58만5637건에서 57만4021건으로 2%(1만1616건) 정도 줄었을 뿐이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죄는 범인·피해자·감시망 부재 등 3가지 요인이 있어야 일어나는데, 사각지대를 살필 수 없는 폐쇄회로(CC)TV만으로는 범죄 예방 효과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 지자체, 셉티드 환경 도입
CCTV와 더불어 건축물·도로·가로환경 건설에 셉티드를 반영하는 것이 요즘 추세다. 전국 지자체들도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벽화를 그려 사람들을 통행로로 유도하고, 시설물들이 주민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도시를 정비하고 있다. 부산시는 우암동과 구포동, 재송동, 금사동 등의 마을 중심에 주민들이 자주 왕래할 수 있도록 정자와 공동 빨래 건조대를 설치하고 있다. 충북 충주시는 사건사고가 잦은 사과나무 이야기길(지현동~문화동) 200m 거리에 보행자 움직임에 따라 자동으로 반응하는 스마트 보안등을 설치했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광역·기초지자체 60여곳은 건축물과 시설을 설계할 때 셉티드를 적용하도록 관련 조례를 제정해 놓은 상태다.
셉티드의 범죄 예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범죄 발생 통계를 분석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지역 내 주요 범죄 발생 지점 및 시간이 기록된 '범죄 지리정보시스템(GIS)'을 도시 설계에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셉티드학회 산학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성원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는 "경찰이 보유한 범죄 자료를 시간과 장소, 범행 종류별로 빅데이터화한다면 범죄 예측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범죄 예측 자료를 바탕으로 셉티드를 적용하고 경찰 순찰 계획에 반영한다면 범죄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셉티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환경 설계를 통한 범죄예방)
미국에서 1970년대 초반부터 사용된 개념.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곳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근거로, 환경 설계를 통해 범죄를 예방하는 건축·디자인 기법을 뜻한다. 유해 환경을 제거하는 등 범죄를 사전에 차단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