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아이 셋을 둔 주부 정모(37)씨는 2주 전 택배 아르바이트(알바)를 시작했다. 최근 남편과 이혼한데다 늘어나는 대출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시작한 일이었다. 정씨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지인 박모(40)씨가 벼룩시장 구인·구직 광고를 보고 '시간당 임금(시급)이 높은 의류 업체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다'며 일을 소개했다.

정씨는 '○○역에서 택배를 찾아 목적지까지 옮겨 달라'는 업체 측의 지시를 받고 배달 일을 했다. 정씨는 처음에 '의류 업체인데 사무실도 없고 이상하다'며 업체를 의심했지만, 업체 측이 "우체국 택배를 배달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니 문제 될 것 없다"고 하자 업체를 믿었다. 정씨는 하루 5시간 일을 하고 일당 5만원을 받았다.

그러던 지난 20일 정씨는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보이스 피싱(전화 금융 사기)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선 경찰이 정씨를 보이스 피싱 조직의 '운반책'으로 지목해 검거한 것이다. 정씨는 지난달 30일 서울 은평구의 한 시중은행 앞에서 윤모씨로부터 1100만원이 든 상자를 건네받아 이를 보이스 피싱 조직에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윤씨는 보이스 피싱 조직의 조직원이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25일 보이스 피싱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정씨를 구속하고 다른 공범들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포장된 상자를 건네받아 내용물을 모르고 그냥 운반했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전락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가 범죄에 가담하는지 모르고 한 일이라고 해도 처벌을 피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