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경기도 부평 미 836부대 간호장교 교육대. 젊은 여성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줄을 섰다. 훈련소 입교 첫날이었다. "미제 레이션 맛 좀 보겠구나…." 다들 달콤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몇몇은 민간 병원 간호사로 있을 때도 군 간부 덕에 레이션 상자를 구경한 적이 있었다. 훈련을 책임진 미군 대령이 고함을 질렀다. "귀관들, 장교가 뭔지 아는가? 장교는 국제 신사다. 자세부터 장교다워야 한다." 그는 걸음걸이와 복장부터 가르쳤다.
▶첫 간호장교 출신 조귀례는 회고 글 '군복 입은 하얀 천사들'에서 태도 얘기를 먼저 꺼냈다. 간호 교육대는 주사 놓기보다 똑바로 서 있는 법부터 잡아주었다고 했다. 감정에 쏠려 빨리 걸어도 안 됐다. 주변을 보며 해찰해도 혼쭐이 났다. 둘러앉아 수다를 떨거나 삐딱하게 서있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민간인과 군인을 구분하는 건 자세"라는 말을 조귀례는 평생 기억했다. 그의 60년 넘은 후배 조여옥 대위가 그제 청문회장에 나왔다.
▶조 대위는 모든 대답의 말끝을 '~다' 혹은 '~까'로 맺으면서 각 잡힌 군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청와대 간호장교였던 그는 계급장 달린 카키색 정복 차림이었다. 의원이 '4월 16일 대통령을 보았느냐'고 묻자 "2014년 4월 16일 말씀하시는 겁니까"하고 되묻더니 "못 봤습니다" 답했다. 말의 앞뒤를 분명하게 끊어 아퀴를 지었다. 모호한 질문이 나오면 그걸 고쳐 물어서 바른 대답으로 완결했다. 시선은 정면을 봤고 어깨는 흔들림이 없었다. 표정은 담담했다.
▶조 대위가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의젓하다', '솔직하다', '믿음이 간다'는 댓글이 쏟아졌다. 팬 카페가 생길 정도로 반응이 좋다. 간호장교 한 사람을 봤을 뿐인데 국군 장교 전체를 신뢰할 수 있게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현장의 대비 효과가 컸다. '법(法) 미꾸라지' 소리를 듣는 옆 증인과 답변 태도가 너무 달랐다. 비아냥거리는 말투였던 남성 의원들, 흥분된 목청을 앞세운 여성 의원들과 견줘도 조 대위가 돋보였다. 한마디로 '장교'였다.
▶국군간호사관학교는 1998년 IMF 여파로 김대중 정부가 폐교 결정을 내렸다. 후보생 모집이 두 해나 끊겼다. 동문들이 들고 일어나 존속 운동을 펼쳐 되살아났다. 이제는 간호병과 출신 장군도 넷이나 배출됐다. 군인에게 자부심은 군기의 원천이다. 조 대위도 간호사관학교 51기생이다. 그가 한 말이 모두 진실인지는 아직 모른다. 본인 말도 바뀐 대목이 있다. 그래도 조 대위가 곧은 자세로 앉아 줄곧 들려준 말투와 몸가짐은 보는 국민을 든든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