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 농락 진상 규명을 위해 열린 국회 청문회가 사실상 끝났다.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등을 상대로 '구치소 청문회'를 한다고 하지만, 강제할 방법이 없다. 이번 청문회 5일간 약 50시간에 걸쳐 여야 의원 18명이 증인·참고인 50여 명을 상대로 질의에 나섰다. 성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기업 출연이 강제성을 띠었다는 진술, '최순실·박근혜 공동 정권'이라는 최씨 측근 진술이 나왔다. 또 청와대 비서실장이 일주일에 한 번도 대통령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안보실이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 몰라 긴급 보고서를 자전거 타고 두 곳으로 보냈다는 진술도 나왔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에선 무엇보다 최씨 일당의 국정 농단을 박근혜 대통령이 어디까지 알고 비호했느냐는 것이 규명돼야 했다. 정권 실세였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최씨의 국정 농락을 묵인·방조한 혐의도 입증해야 했다. 청문회는 이 본질 근처엔 가지도 못했다. 박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아 김·우 두 사람 청문회가 핵심으로 떠올랐지만 "모른다" "아니다"는 대답만 줄기차게 돌아왔다.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준 것이 아니라 분노만 더 돋웠다.
김 전 실장은 최씨를 모른다고 하다가 최씨가 나오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 영상이 공개되자 그제야 시인했다. 그뿐이었다. 최씨와 관련된 일들을 전혀 몰랐다며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말을 20차례 넘게 하는 식으로 빠져나갔다. 우 전 수석 장모와 최순실씨가 골프를 쳤다는 증언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나왔다. 그래서 우씨의 청와대 입성이 최씨를 통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됐지만 우씨는 시치미를 뗐고 2014년 12월 '정윤회 문건' 사건 전까지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만 했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은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 등 모든 권력기관으로부터 정보를 받는다. 그런 두 사람이 최씨의 동태를 몰랐다는 것은 누구든 납득할 수 없다. 큰 권한이 없던 이석수 특별감찰관도 인지했던 사건을 두 사람이 몰랐다면 무능하거나 거짓말이다. 이들은 결코 무능하지 않다. 우 전 수석은 김 전 실장과 마찬가지로 "(최순실 사태를) 미리 알고 예방 조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직무 유기 혐의를 피하려는 계산된 방어 논리다.
이 '법 미꾸라지'들이 이렇게 나올 것이란 점은 예상되고도 남았다. 청문회를 앞둔 의원들이라면 김·우 두 사람의 방어 논리를 뚫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했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많은 자료와 보도가 있었다. 공부하고 대비했으면 이렇게 허망하게 두 사람에게 농락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원들이 이들에게 무엇을 묻고, "모른다"고 하면 그냥 넘어가는 행태가 반복되자 TV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무능하고 한심한 의원들을 향해서도 분통을 터뜨렸다. 수사 기밀이 최씨에게 들어갔다는 의혹, 민정수석실이 최씨 관련 시설을 현장 조사하려다 갑자기 취소했던 이유 등 주요 문제들이 하나도 풀리지 않았다. 그나마 김 전 실장의 거짓말 하나를 번복하게 한 것도 TV로 청문회를 보던 네티즌이었다.
이제는 특검이 김·우 두 사람의 방조 또는 직무 유기를 밝혀내야 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중요하지만 공직자가 지식과 재주를 이용해 국정 농락을 엄호하고 방조하면 결코 무사할 수 없다는 '징비록(懲毖錄)'을 특검이 남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