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여, 안녕'의 저자 로렌스 곤잘레스는 '생존: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법칙'이라는 책에서 9·11 테러와 비행기 추락 사고 같은 재난 상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이 최악의 순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이유를 고찰했다. '트라우마여, 안녕'은 '추락'의 후속작이다. 사건 이후 피해 생존자들의 삶을 그려낸 것이다. 그들은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에게 따라붙은 공포와 두려움을 어떻게 떨쳐냈을까. 아니 트라우마를 떨쳐내는 게 과연 가능하기는 한 걸까. 이때 시간은 진정한 우리의 편이, 진짜 약이 되어 줄까.
나는 오래전부터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기록들을 유심히 읽었다. 이런 강박증은 자살자가 아니라 그것을 목격했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어버린 생존자들에 대한 관심으로 폭발했다. 자살자의 심리를 추적해 부검하는 '심리부검' 같은 용어가 내겐 일상어처럼 친숙해진 이유도 그런 탓이었다. 그래서 '트라우마여, 안녕'에서 다음의 문장을 발견했을 때,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받았을 때 미국 연방재난관리청에서는 1억5500만달러를 투입하여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심리 상담을 받게 했다. 전문가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 때문에, 혹은 무시무시한 사건을 목격하고 받은 정신적 충격 때문에 25만명 정도가 상담을 받으러 오리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상담을 받으러 찾아온 사람은 300명뿐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심리학 교수인 리처드 테데스키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대부분 2년 안에 일상생활로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텍사스 대학에서 사회심리학을 가르치는 제임스 페니베이커 교수는 이런 사실을 두고 '정신건강 분야의 일급비밀 중 하나'라고 표현한다."
300명이라고? 고작? 최근 쏟아지고 있는 자존감과 트라우마 관련 서적들을 떠올리자, 나로선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2년 안에 일상생활에 돌아간다는 게 가능하다니. 인간의 회복 탄력성이 그렇게 대단하단 말인가. 이런저런 의문을 가진 채, 나는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실 내게 '트라우마여, 안녕'은 여러모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연상시켰다. 이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 카일은 이라크전 참전 용사로 적들에게는 공포의 대상 그 자체. 한 명의 전우라도 더 살리기 위해 그는 적을 조준사격하는 전설적인 스나이퍼로 활약한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의 영웅은 아내와 아이들의 품으로 돌아오자마자 일상에서 심각한 장애를 겪는다. 환청과 환시, 악몽이 그의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있는 브룩 육군의료원의 용맹군인센터를 견학할 기회를 얻었다. 거기에서 정형외과 및 회복 담당국의 책임자인 짐 피크 대령의 안내를 받아 카렌돔(caren dome)이라는 가상현실 시스템을 체험했다. 나는 이라크의 실제 마을과 똑같이 만들어진 공간으로 걸어 들어갔다. 짐이 말했다. '저는 이라크에 다녀온 후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기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쓰레기는 거리에 사제폭탄을 숨길 때 가장 좋은 은폐물이므로, 쓰레기는 짐 피크의 정서체계에서 위험과 공포로 분류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조건반사를 무효화하기 위해 그들은 참전 군인들을 카렌돔에 투입했다. 군인이 마을을 통과하며 걸어간다. 처음에 거리는 공황발작을 일으킬 만한 사물이 전혀 없이 완벽하게 깔끔하다. 그러다가 시스템 운용자가 점차 거리에 뭔가를 채워 넣는다. 군인이 마을을 돌아다니는 동안 풍경을 차차 복잡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번잡하고 어지러운 거리를 걸어가고, 쓰레기통 옆을 지나갈 때도 있고, 그가 황급히 엎드리지 않을 때까지 말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피해 생존자가 등장한다. 상어에게 물어뜯긴 한 여자는 사고에서 구출된 후에도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상어와 싸워야 했다. 악어의 공격을 받은 다른 생존자는 사건 당일의 풍경과 소리, 냄새가 자신의 기억을 촉발하지 않을까 평생을 신경 써야 했다. 일례로 뉴욕 시민 중에는 화창한 가을 아침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 여럿이다. 비행기 두 대가 세계 무역 센터로 돌진한 날 날씨가 화창했기 때문이다. 참사가 일어나는 동안 그들의 편도체는 아무 연관도 없는 날씨를 위험 신호와 연관지은 것이다.
책을 읽다가 나는 '과거의 나'와 사건 이후 '달라진 나'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게 됐다. 하지만 나를 가장 흥분시켰던 건 생과 사의 그 갈림길이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새로운 나'와 만나는 계기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악어를 올려다볼 때 아일린은 불현듯 거기서 죽을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무심한 악어의 공격 한 번에 사랑하는 모든 것을 빼앗겨야 하는 것이다… 아일린의 내면에서는 전에 없던 결심, 새로운 의지가 고개를 들었다. '싸워야 해.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살아남아야 해.' 아일린은 다짐했고 이를 실천했다. 그녀는 결심한 대로 진정한 생존자가 됐다. 물 밖으로 나와 피를 흘리며 선창에 누웠을 때도 자신이 분명히 살아남으리라 확신했다."
악어에게 물어뜯긴 후 겪게 되는 고통, 수많은 수술과 재활 훈련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남편의 총을 피해 살아난 생존자, 망망대해 보트 위에서 기적처럼 구출된 여자와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군인. 그들의 고통은 과연 살아남은 것 이상 의미가 될 수 있을까. 흥미로운 건 피해 생존자 중에는 고통이 자신의 삶을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것으로 변모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암을 고마워하는 암환자라는 이해하기 힘든 아이러니는 이렇게 탄생한다.
고통은 타인을 위한 공감과 이타심으로 발현될 때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모한다. 강연, 소설 집필, 봉사 활동 등으로 자신의 경험을 나눌 때, 그것은 더 이상 나의 개인적 고통이 아닌 위기 상황에 봉착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학·심리학적 증언으로 확장된다. 저자는 생존이 일종의 승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생존 이후, 트라우마를 겪은 후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힘들며, 어쩌면 끝내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장이 '과거와의 결별'이 아닌 '더 나은 나'로의 긴 여정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상처가 얼마든지 꽃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쓴 책이다. 이 책에 서평이 단 한 개도 붙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다.
●트라우마여, 안녕―로렌스 곤잘레스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