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탁구선수권대회가 열린 21일 오후 인천 계양체육관. 이날 남자 단식 결승전은 지난 8월 리우올림픽에서 세계 최강 중국 선수들과 끈질긴 승부를 펼친 정영식(24·미래에셋대우)과 지난해 이 대회에서 정영식을 꺾고 우승한 박강현(20·삼성생명)의 '리턴매치'로 열렸다.

모처럼 탁구장을 찾은 관중 400여명은 "정영식 파이팅!"을 외쳤다. 정영식이 리우올림픽 때처럼 포효하자 10대·20대 여성 팬들이 플래카드와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앞으로 정영식은 얼마만큼 더 성장할까. 연이은 경기에 손바닥이 갈라져 피가 났지만 그의 집중력과 드라이브는 리우올림픽 때보다 더 무서웠다. 이날 종합선수권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정영식(왼쪽)이 박강현에게 서브를 넣는 모습.

탁구 왕국인 중국에서 원정 응원을 온 팬들도 있었다. 리우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친 정영식은 중국 팀의 제의로 지난 10월부터 중국 리그에서 뛰고 있다. 중국 팬들은 "다옌(大眼·눈이 큰 정영식의 중국 별명)"을 외쳤다. 이들은 망원카메라로 경기를 촬영하고 샴푸를 선물로 준비해 왔다. '땀을 많이 흘리니 머리 잘 감으라'는 뜻에서 가져왔단다. 베이징에 산다는 직장 여성 한이(25)씨는 "리우올림픽 때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다"며 "외모는 만화 캐릭터 같은데 어쩜 그렇게 탁구를 잘 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강문수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은 "유남규·유승민 이후 한국 탁구 대회에서 참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라고 했다.

정영식은 또 역전승했다. 1세트를 10―12로 내준 뒤 2~5세트를 내리 따내 경기를 끝냈다. 승부처는 2세트였다. 동점 상황에서 정영식은 지금껏 구사하지 않던 '비밀 병기' 역회전 서브를 날렸고 당황한 박강현은 무너졌다. 박강현은 지난해 정영식을 세트스코어 4대0으로 누르고 우승했지만, 이번엔 정영식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정영식은 경기가 끝난 뒤 "리우올림픽 이후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다. 중국의 강자들과 붙으면서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역회전 서브도 그 과정에서 개발했다. "중국 팀 복식 파트너가 '넌 왜 결정적인 순간에 안정적으로 플레이하려고 하느냐'고 해서 뜨끔했어요. 중국 선수들 속에서 과감한 정영식으로 다시 태어난 걸로 봐 주세요."

정영식 선수의 갈라진 손바닥.

정영식은 13일 중국에서 입국해 이번 대회에서만 6일간 내리 23경기를 치렀다. 이날은 탁구채를 쥐는 오른 손바닥 굳은살이 갈라져 피가 나는 바람에 테이프를 감고 경기에 나섰다. 김택수 미래에셋대우 감독은 "손이 저런데도 핑계 한 번 안대 안쓰러웠다"고 했다. 정영식은 2012년, 2014년에 이어 세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정영식의 꿈은 국내 무대 정복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는 "현재 10위인 세계 랭킹을 내년엔 5위까지 끌어올리고 도쿄올림픽 땐 금메달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한국 남자 선수의 최고 랭킹은 유승민의 2위였다. 정영식은 23일 다시 중국으로 출국한다.

이날 여자 단식에선 삼성생명 선수들이 1~3위를 모두 차지했다. 결승에선 중국 귀화 선수 최효주(18)가 정유미(21)를 4대1로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남녀 단체전은 각각 삼성생명, 포스코에너지가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