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복판에 1950년대 한국식 다방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민자들로 다채로웠던 뉴욕이 프랜차이즈로 덮여가는 게 싫었거든요. 스타벅스 앞에 당당히 '한국 다방'을 차렸습니다."
바리스타 변옥현(31)씨는 지난해 6월 뉴욕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스타벅스 맞은편에 '라운드케이 다방'을 열었다. 한글과 영어로 '라운드케이 다방'이라 쓰인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도자기나 자개, 한복이 눈에 띈다. 정통 커피는 기본이고 계란 노른자를 넣은 '카푸치노의 기원'이나 쌍화차·보리차·오미자차 같은 한방차도 판다.
변씨는 뉴욕에 한국식 다방을 만들기로 하고 몇 개월 동안 전주와 마산에 남아 있는 옛날식 다방을 답사했다.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시절에 지어진 목조 건물의 특성을 따왔고 소품도 한국에서 직접 공수했다. 그는 "손님과 정이 오가는 한국의 '다방 문화'를 외국에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변씨는 건국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핫초코를 공짜로 마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공학도답게 물을 붓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커피 맛, 에스프레소 기계의 구조에 빠졌다"는 그는 "수치화하고 분석하기 좋아하는 성격이 맛과 향의 세밀한 감각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에스프레소의 근원이 궁금해 피렌체로 커피 유학까지 다녀왔단다.
하루 평균 300여 명이 그의 다방을 찾는다. "웰빙 트렌드 때문인지 오미자차 같은 한방차 반응이 좋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향미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면서 "계란 노른자를 넣은 다방 커피도 '고소한 라테 맛'이라며 좋아한다"고 전했다.
그는 단골손님과 짧은 이야기라도 나누려고 노력한다. 유명 재즈 뮤지션인 레니 스턴은 "다방에서 좋은 영감을 받았다"면서 새 앨범을 선물했다. "밤마다 들러 동네 주민인 줄만 알았던 사람이 영화배우 겸 코미디언 아지즈 앤사리더라고요. '내가 뉴욕에서 일하고 있구나'를 실감했죠."
목요일이나 금요일 저녁엔 소주 파티도 연다. 지역별 소주의 맛을 소개하고 '주안상'이라는 이름으로 계절별·날씨별로 어울리는 술안주를 내놓는다. 한국 명절이나 미국 추수감사절 같은 기념일엔 단골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개업 초기엔 한글과 한국 문화를 앞세우다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K팝과 한식이 알려지긴 했지만 마니아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 "베이글이나 스크램블드에그처럼 그들에게 친숙한 메뉴와 한국 다방 문화를 조화시키려 노력했다"고 했다. "한국 하면 '강남스타일'만 알던 손님이 단골이 돼 '맛과 멋을 갖춘 나라' '다양성의 나라'라고 칭찬해주면 기분 좋지요."
변씨의 뉴욕 다방은 맨해튼 중에서도 초창기 이민 역사를 주도한 로어이스트사이드에 있다. 정면엔 스타벅스가 있고 뒤편으론 차이나타운이 펼쳐진다. "이곳이 이민자의 경계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고 문화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뉴욕에서 가장 한국스러운 문화를 선보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