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27)씨는 최근 독서 모임 회원들과 함께 헌법(憲法) 공부를 시작했다. 이들은 평소처럼 매주 모여 정해진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눈 뒤 함께 헌법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A씨는 "공대 출신이라 한 번도 헌법을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었다"며 "헌법 정신에 대해 공부하면서 민주 시민으로서 나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주부 박모(32)씨는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자신의 SNS에 헌법을 필사(筆寫)한 사진을 올렸다. 그는 "촛불집회 때 '탄핵하라'고 구호를 외치는데 정작 그 뜻을 정확히 모르고 있어 부끄러웠다"며 "지난 두 달간 정부는 국민이 아는 만큼 움직인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고 헌법을 직접 손으로 써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헌공(헌법 공부)' 열풍이 불고 있다. 삼삼오오 '헌법 스터디'를 꾸리거나 개인적으로 동영상 강의를 통해 헌법을 공부하기도 한다.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현 시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 7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한 시민단체 강의실에서는 '헌법을 알면 민주주의가 보인다'라는 강의가 열렸다. 이날 강연에는 교복 입은 학생부터 중년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대 시민 40여명이 몰렸다. 강연이 끝나자 "박 대통령은 헌법의 어떤 조항을 근거로 탄핵할 수 있는 거냐" "헌법에서 보장하는 대통령의 권한은 어디까지냐" "박 대통령을 내란죄로 처벌할 수 있느냐"는 등 시국과 관련해 평소보다 많은 질문이 몰렸다. 이날 강연했던 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장은 "학교에서 헌법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치지 않아 많은 국민이 헌법을 제대로 모르고 산다"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헌법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큰 것 같다"고 했다.
출판계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헌법 교양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11월 말 출간된 '지금, 다시 헌법(로고폴리스 刊)'은 초판 5000부가 일주일 만에 다 팔렸다. 2009년 나온 '안녕, 헌법'의 개정판인 이 책은 사회·정치 분야에서는 이례적으로 출간 한 달 만에 8쇄까지 찍었다. 로고폴리스 김정희 대표는 "헌법 관련 이슈를 추가해 개정판을 내기로 하고 작년 12월부터 준비했는데 공교롭게 시국과 맞물렸다"며 "헌법 교양서에 대한 수요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고 했다. 나온 지 몇 년 된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 헌법(고인돌 刊)', '헌법 사용 설명서(이학사 刊)' 등을 찾아 읽는 사람들도 늘었다. 이학사 관계자는 "2012년 출간한 '헌법 사용 설명서'는 탄핵 이후 주문량이 10배 가까이 뛰었다"며 "개정판을 기획할지 논의 중"이라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몇 번의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국가의 역할과 책무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민사회가 한층 더 성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