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한명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2016년 칸 황금종려상 수상한 영국의 사회파 감독 켄 로치의 걸작
가난이 '부도덕'으로 매도되는 현실…'허울뿐인 복지제도' 고발

평생을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가던 다니엘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는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영국의 유명한 좌파감독 켄 로치는 이 영화로 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영화는 선별적 복지제도의 병폐를 정면으로 고발하며, 인간의 존엄에 대해 말한다.

◆ '유명무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다니엘

영화가 시작되면 노인의 몸 상태에 대해 기계적인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와 이에 퉁명스럽게 답하는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다니엘은 지금 사회복지 심사를 받는 중이다. 목수로 일하다가 심장발작을 일으킨 다니엘은 의사의 권고로 일을 쉬게 되자 질병수당을 신청한다. 그러나 양식화된 문답으로 이루어진 심사에서 탈락한다. 즉 사지가 멀쩡하여 노동이 가능하니, 질병수당은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복잡한 행정절차를 밟아 재심을 청구하지만 언제 재심이 이루어질지 알 수 없다. 그동안 실업수당이라도 받으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모든 서류가 인터넷으로 작성하고 제출하게 되어 있어서, 평생 마우스 한번 잡아본 적 없는 다니엘에겐 까마득한 문턱이다. 그뿐이 아니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면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다니엘은 직접 작업장을 방문하여 구직활동을 해보지만, 그것은 증빙자료가 되지 못한다. 막상 구직이 되어도 진짜로 일을 하기는 힘든 처지다. 의사가 일을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질병으로 노동능력을 상실한 사람이 맞지만, 서류상의 양식에 의해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질병수당과 실업수당 중 어떤 복지혜택도 받을 수 없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찾아간 관공서에서 다니엘은 자신보다 더 딱한 처지에 있는 싱글 맘 케이티와 어린 남매를 만나 작은 도움을 주고, 점차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가난이 '부도덕'으로 매도되는 현실…"누구를 위한 복지인가"

다니엘은 사회복지사무소에서 자신만큼이나 억울한 처지에 놓인 여성을 만난다.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케이트는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뉴캐슬 지방으로 이사 왔다. 런던의 노숙인 숙소 단칸방에서 두 아이를 키우던 케이트는 주거사정이 나은 지방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싶다. 방송통신대를 다니며 학업과 일을 병행하겠노라 결심하지만, 당장 전기료 낼 돈도, 생필품을 살 돈도 없다. 무료 식료품 배급소에서 식료품과 휴지를 받아들고는 생리대는 없냐고 묻는 케이트. 허기를 참지 못해 허겁지겁 통조림을 따먹다가 망연해지고, 마트에서 여성용품을 훔치다 적발되어 자존감이 무너진다.

영화는 선별복지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세분화된 행정절차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선별복지가 이루어지지만, 다니엘을 위한 복지에 그가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노인이라는 사정은 고려되지 않는다. 케이트를 위한 복지에도 그가 여성용품을 필요로 하는 여성이라는 사정은 고려되지 않는다.

일생 정직한 노동으로 살아온 다니엘이 괴상한 복지제도로 인해 노동은 하지 않고 복지혜택만 받으려는 게으름뱅이로 오인되고,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보려 발버둥치는 케이트는 성매매로 쉽게 돈을 벌려는 타락한 여성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가난은 곧 부도덕으로 매도된다. 이 모든 것이 일자리는 적고 복지의 문턱은 높은 탓이지만, 사회는 이들에게 경쟁에서 이기라는 말을 할 뿐이다.

10살 딸, 7살 아들, 아이 둘과 함께 런던에서 뉴캐슬로 이주한 싱글맘 케이티는 런던에서 보복성 퇴거 조치를 당하고 노숙자들을 위한 쉼 터에서 생활하던 중, 뉴캐슬로 오게 된다.

◆ 갑갑한 현실 속 피어나는 인간애 “나는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하기를”

영화는 사회복지 시스템의 갑갑한 실상을 고발하는 한편,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따뜻한 연대를 비춘다. 다니엘은 케이트의 집을 고쳐주고, 아이들을 돌봐준다. 옆집 이주민 청년은 다니엘에게 인터넷으로 서류 작성하는 법을 알려준다. 케이트는 자신의 한 끼 식사를 최소한의 성의라며 다니엘에게 내놓는다.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 말하며 사회복지 사무소 담벼락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시작되는 글자를 적는 다니엘. 그의 행위에 누군가 박수를 보낸다. 케이트가 사회복지사무소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을 때 다니엘이 항의했던 것처럼, 다니엘의 저항에 박수쳐주는 낯모르는 누군가의 응원은 큰 힘이 된다.

영화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고 수치와 포기를 강요하는 사회에게 다니엘이 남긴 명징한 말을 들려준다. “...난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아닙니다....난 굽실대지 않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웃을 도왔습니다. 자선에 기대지 않았습니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는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하기를. 나는 한명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소위 생산적 복지, 선별복지의 미명하에 복지서비스를 받아야 할 시민들이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존엄성을 짓밟히는 일들이 비단 외국영화에서만 있는 일일까. 실제로 노동능력이 없지만 노동능력이 있다고 간주되어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죽음을 택한 송파의 세 모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까.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라는 족쇄에 묶여 활동보조인 없이 죽어간 수많은 장애인들은 또 어떠했을까. 광장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는 지금, 기본소득을 비롯한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이다.

◆ 황진미는 진단검사의학 전문의로 근무하던 중 2002년에 ‘씨네21’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데뷔했다. 관념적이고 아카데믹한 영화 비평이 대세이던 시절에, 평론가들이 무시하는 대중 영화들을 ‘일상 언어'로 참신하게 소개해 큰 호응을 받았다. 현재 ‘씨네21’ ‘엔터미디어’ 등 여러 매체에 영화와 대중문화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칼럼 타이틀에 대한 아이디어로 ‘황진미의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황진미의 영화로운 삶' ‘황진미의 훅가는 영화'를 제안할만큼 유머와 한방이 있는 글쓰기로, 앞으로 조선비즈의 ‘영화 리뷰'란을 채워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