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이 조선 15대 임금으로 즉위한 1608년, 영국왕 제임스 1세는 아일랜드의 한 양조장에 위스키 증류 허가를 내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위스키 양조장으로 꼽히는 부쉬밀(Bushmills)이다. 부쉬밀은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다. 아일랜드 대문호 제임스 조이스는 ‘20세기 문학의 이정표’라는 대작 ‘율리시스’에 부쉬밀 위스키를 언급했고, 아일랜드 정부는 2008년 5·10·20파운드 지폐에 양조장을 새겨넣어 부쉬밀 설립 400주년을 기념했다.
국내에선 위스키라면 자동으로 스코틀랜드를 떠올리지만, 아일랜드도 스코틀랜드만큼 위스키 역사가 길다. 부쉬밀 위스키 생산을 총괄하는 마스터 디스틸러(master distiller) 콜럼 이건(Egan·47)은 “아일랜드 위스키업체들은 전통적으로 미국시장을 가장 중시했고 규모도 작은 반면, 스코틀랜드 위스키업체들은 전세계를 상대로 장사했을뿐 아니라 인수·합병을 통해 꾸준히 몸집을 불려 더 널리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스키를 ‘whisky’라고 표기하지만, 아일랜드에서는 ‘whiskey’로 e를 추가한다. 이건은 “맛에서도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위스키는 작지만 명확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스카치(스코틀랜드 위스키)는 보리 등 원재료가 되는 곡물을 피트(peat·이탄·泥炭)으로 말립니다. 스카치를 마시면 탄내 혹은 연기 냄새가 나죠. 이 스카치 특유의 훈연향이 피트를 태워서 곡물을 말릴 때 배어드는 겁니다. 아일랜드 위스키는 곡물을 가마에 건조해 원재료 맛이 가려지지 않아요. 또 스카치는 보통 2번 증류하지만, 아일랜드 위스키는 3번 증류해 목넘김이 부드럽습니다.”
부쉬밀은 지난 7월 국내에 첫 공식 진출했다. 한국이란 새 시장을 파악하기 위해 방한한 이건은 지난 18~19일 서울 한남·청담동 유명 바(bar)를 돌며 한국인의 음주문화를 면밀히 관찰했다. “술을 병으로 주문해 나눠 마시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서양에선 각자 취향대로 다른 술을 잔으로 주문해 마시는 게 보통이죠. 또 한국 손님들은 함께 온 일행과만 끝까지 시간을 보내더군요. 아일랜드에서 바에 가는 이유는 오래 전부터 알던 이들뿐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 때문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