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책'을 2회에 걸쳐 싣는다. 이번 주는 '2016 올해의 책 10', 다음 주는 '2016 올해의 국내 저자 10'이다. 첫 회가 '책'에 방점을 찍는다면, 다음 주의 2회는 '사람'에 주안(主眼)이 있다. 상대적으로 번역서 강세인 국내 출판 시장에서 탄탄한 국내 필자의 발견을 시도하고 응원한다는 취지도 있다.

'2016 올해의 책 10'의 특징 중 하나는 '글 잘 쓰는 의사의 약진'이다. 선정위원들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숨결이 바람 될 때'의 폴 칼라니티, '온 더 무브' '고맙습니다, 올리버 색스'의 올리버 색스가 그 예다. 문학과 의학을 모두 공부한 뇌 전문의라는 공통점도 예외적인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낭만적이면서도 이성적이고, 의사이면서도 기품 있는 문장을 지닌, 귀한 재능들이다.

선정위원들의 개별 추천 도서 목록

국내 소설이 단 한 편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두 권의 국내 작품이 선정됐다. 14명이 추천한 '숨결이…'에 이어 13명의 지지를 받은 정유정의 장편 '종의 기원'과 올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강의 최신작 '흰'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예술가의 재능보다 성실과 노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자기계발서'로 분류해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인공지능(AI) 충격과 페미니즘이라는 2016년의 키워드를 간명하게 전달하는 '로봇의 부상'과 '나쁜 페미니스트'도 올해의 책에 포함됐다.

◇ 올해의 책 어떻게 뽑았나

'2016 올해의 책 10'은 작가·학자·평론가·번역가·출판사·서점 대표 등 조선일보 Books팀이 위촉한 전문가 선정위원 45명이 각 5권씩 추천하고, 연 100만원 이상 책을 구입하는 교보문고 북클럽 프리미엄 회원 357명이 문학, 경제경영·자기계발, 인문·종교·역사, 정치사회·과학, 예술·취미실용 등 5개 분야에서 5권에 투표했다. 선정위원과 교보 회원의 책 추천 비율을 합산해 조선일보 Books팀이 최종 선정했다. 출판사 대표의 경우, 5권 추천 중에서 자사(自社) 책 추천은 1권씩만 할 수 있도록 했다. 대상은 2015년 12월~ 2016년 11월 출간도서. 지난해 11월 출간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추천한 전문가들이 많았지만, 이 기준에 따라 '2016 올해의 책'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선정위원들의 개별 추천 도서는 chosun.com 에서 볼 수 있다.

좋은 책이 대중적 지지까지 받을 때, 서평 담당 기자는 행복하다. 8월 마지막 주 Books의 커버스토리로 소개했던 이 책은 이번 설문에서 가장 많은 14명의 지지를 받았고, 출간 4개월 만에 10만부가량 팔렸다.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된 젊은 의사의 회고록. 서른여섯으로 죽기 직전 2년간의 사투다. 찰스 디킨스와 나보코프와 카프카를 사랑했던 전직 영문학도가 엄살도 과장도 없이 진심으로 써내려 간 마지막 인생이 이 안에 있다. 이 책을 지지한 소설가 정이현은 "죽음에 직면한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게 서술해가는, 그 어려운 일을 했다"면서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지만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정말로 소중함을, 덕분에 깨닫는다"고 했다.

압도적 서사로 독자를 매혹시켜온 작가가 다시 한 번 정유정이라는 종(種)의 기원(起源)을 확인시킨 작품. '7년의 밤'과 '28'에 이어 3년 만에 내놓은, 강력한 서사의 장편소설이다. 한 청년이 살인자가 돼가는 과정을 그린 이 악인 탄생기는 5월 출간 이후 17만부가 팔려나갔고, '2016 올해의 책' 투표에서도 2위에 올랐다. 소설은 일련의 살인 사건과 사이코패스의 치밀한 내면 묘사를 통해 악은 '누군가'가 아니라 '누구나'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는 "악의 평범성을 역설한 해나 아렌트와 공포의 정체를 고찰한 스티븐 킹이 어우러진 소설"이라고 호평했다. 작가는 "예방주사 맞는 기분으로 즐겨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소설의 인기는 올해 독자들이 그만큼 악의 백신을 갈망했다는 방증일지도.

이 책을 '2016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는 마음은 착잡하다. 인공지능(AI)의 현주소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이자, 자동화가 빼앗을 인류의 미래에 대한 묵시록이기 때문이다. '로봇의 부상'이 국내에 출간된 건 지난 3월. 닷새 전인 지난 12월 5일, 아마존은 미국 시애틀에 식료품 마트 '아마존 고(Amazon Go)'를 열었다. 51평짜리 이 마트에는 계산대도, 계산원도 없다. 미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마존이 이런 마트 수천 개를 열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묵시록의 첫 페이지를 열었달까. 우울하지만, 인류의 미래 행동 지침을 위한 불가피한 독서.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피할 곳도 없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고 추천했다.

좋은 글을 쓰는 요령은 무엇인가. 하루키는 재능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제출한 정답은 '꾸준함'이나 '성실성'. 하루키에게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링 위에서 버티는' 일에 비유된다. 잘 써지든 못 써지든 매일 일정한 분량을 꾸준히 써나가며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 육체노동. 이 책에 따르면, 그러니까 그 모든 글쓰기 요령을 가르치는 책은 일종의 거짓말이다. 덕분에 글쓰기를 업(業)으로 삼는 많은 사람이 위안받는다. 남정욱 작가는 책 읽은 소감을 이렇게 요약했다. "처음엔 남들은 어떻게 쓰나 궁금했고, 남들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생각하니 살짝 기분이 좋아졌고, 다들 같은 고민을 한다고 생각하니 매우 위로가 되었다."

13명이 숨진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 범인 두 명 중 하나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가 썼다.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아이는 우울증이었다. ‘내 아이가 어떻게?’란 물음을 가슴에 안고 16년간 문제를 파헤쳐온 엄마는 “아이에게 이를 잘 닦고, 골고루 먹게 하는 것처럼 ‘뇌 건강 관리’도 가르치라”고 간곡히 당부한다. 추천자인 제현주 롤링다이스 대표는 “어머니의 지난한 노력에서 인간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다”고 했다. 동시에 “너무 많은 사건이 곱씹을 새 없이 지나간 올해, 한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도 알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지난 5월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으면서 국내외에서 가장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는 한국 작가의 2016년 신작. 강보, 달떡, 안개, 젖 등 '흰 것'에 대한 기록이다. "시와 소설이 따로인 듯 어울리는 백색의 향연"(북21 김영곤 대표)이라는 평처럼, 한 권의 소설이지만 65편의 시집이라 해도 무방하다. 책은 얇으나 쉽게 읽혀버리지 않으며 맑은 흔적을 남긴다.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책엔 '작가의 말'이 없다. "이 소설 전체가 '작가의 말'"이라 한다.

'초원의 역사'는 그동안 막연한 미지의 서사이자 타자의 기록이었다. 장성(長城) 안쪽 중국 대륙에서 바라본 시각이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옮겨지다시피 했던 것이다. '반혁명분자'의 아들로서 수용소를 전전한 이력 덕에 중앙아시아의 여러 언어에 능통해진 구소련 학자가 쓴 이 책은 '장성 바깥'에서 현장을 본 새로운 중앙유라시아사(史)라는 의미가 있다. "최근에서야 서방 세계에 알려진 전 세계적인 시각의 역사책인데, 대단한 재미까지 갖추고 있다"(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얘기다. '몽골 비사' 같은 사료가 문학·지리·환경·사상과 어우러져 참신한 역사 해석으로 이어지고, '선한 농경민과 악한 유목민'이란 이분법을 깨뜨린다.

신경학 전문의로 '의학계의 계관 시인'으로 불리던 저자가 지난해 타계하기 전 마지막으로 써낸 자서전. 모터사이클 속도광에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한 여정으로 지구에 '선을 새긴' 모험가이자 여행가로서의 이야기가 페이지마다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동성애자였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라고 말하는 비수까지 꽂았다. 하지만 그런 상처와 더불어 살았기에 누구보다도 따뜻한 시선으로 다른 이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강맑실 사계절 대표는 "막막하고 두려운 죽음 앞에서 이렇게 삶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라며 "인간의 추악하고 비열한 면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 요즘, 이 책은 그 반대편에 있는 한 숭고한 인간을 만나게 해줬다"고 말했다.

미국 퍼듀 대학 교수이자 문화 비평가인 저자가 왠지 '두렵고 불편한' 페미니즘을 영민하고 유쾌한 문체로 통쾌하게 풀어냈다. 올 3월 국내 번역 출판된 뒤 6개월 이상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면서 페미니즘 관련 출판 열풍에 불을 붙였다. 패션지와 드레스에 환상을 가진 여성이라도, 머리띠 두른 사회운동가가 아니더라도, 여성 인권에 대해 발언할 수 있다며 연대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여성 혐오 논쟁 시대에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것이 가장 '쿨(cool)'한 행동으로 만든 기폭제가 됐다. 조미현 현암사 대표는 "잠재의식에 깔려 있는 여성 혐오 문제를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역할뿐만 아니라 약자를 대변하는 해방구 역할을 했다"며 추천했다.

1945년, 2차 대전이 끝나고 'Year Zero'에서 출발한 세계는 결코 깔끔하지 않았다. 심지어 매우 불완전하게 출발했다. 정의를 앞세운 파괴와 복수는 또 다른 야만과 방종을 불렀을 뿐이다. 하지만 세계는 그렇게 절름거리며 지금까지 걸어왔다. 이상을 노래한 완벽주의자들이야말로 이 세계에 전쟁과 갈등을 불러오곤 했다. 오히려 인간의 불합리성과 결핍을 인정할 때 우리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 서점 알라딘 조유식 대표는 "그리 정의롭지만도 않았고 대단히 어수선했으며, 그러면서도 한발 더 전진했던 그 한 해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며 "인간 본질에 대한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지며 역사에 대한 통찰을 돕는 책"이라고 평했다.

※다음주에는 '올해의 국내 저자 10'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