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7일 '최순실 게이트' 2차 청문회에서 "사실이 아니다" "모른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의원들은 이런 김 전 실장을 압박할 만한 결정적 사실 관계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언론에서 나온 의혹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일부 야당 의원은 "죽어서도 천당에 못 갈 것" "법률 미꾸라지"라는 등의 말을 하기도 했다.

◇김기춘 "최순실 존재도 몰라"에서 "이름은 알았다"

김 전 실장은 이날 오전 "최순실의 존재를 몰랐냐"는 질의에 "전혀 몰랐다"며 "이번 태블릿 PC 보도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최순실을 알았다면 뭔가 연락을 하거나 한 통화라도 하지 않았겠느냐"며 "검찰에서 조사하면 다 알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7일‘최순실 게이트’관련 국회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에 출석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정회 도중 눈을 감은 채 홀로 증인석에 앉아있다. 그는 최순실씨와의 관계 등을 묻는 질문에 대부분“사실이 아니다”“모른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김기춘의 양극단을 오가는 '놀라운' 기억력]

김 전 실장은 "2014년 말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이 가져온 보고서(이른바 '정윤회 문건')에도 최순실은 없었다"며 "그래서 제가 모른다"고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당시 보고서를 제시하며 "첫 대목에 최순실이 등장하지 않느냐"고 했다. 또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최태민·최순실 관련 의혹이 제기되는 장면에 김 전 실장이 앉아 있는 영상도 제시했다. 그러자 김 전 실장은 잠시 당황하며 "제시하시는 자료를 보니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못 들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알지는 못한다"고 했다. 김 전 실장은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아 바로잡겠다"며 "최순실을 모른다는 것은 지인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했다.

함께 증인으로 나온 차은택씨는 "최순실이 '김 실장 연락이 올 것'이라고 한 뒤 (김 실장) 전화를 받고 정성근 당시 장관 후보, 김종 전 차관과 함께 김 실장 공관에서 만났다"고 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대통령이 '차은택 감독을 한번 만나보고 문화 융성 의지를 알아서 보고하라'고 해서 제가 직접 연락해 오라고 했던 것"이라며 "세 사람을 동시에 만난 것은 아니고 따로따로 만났다"고 했다. 김 전 차관은 "최순실을 소개해준 사람이 김 전 실장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건 와전된 것이며 아는 지인이 소개해줬다"고 했다. 차씨는 "최순실이 김 전 실장을 지칭하면서 좋은 얘기를 한 적이 없고 '고집이 세다'는 식으로 푸념하듯 말했었다"며 "최순실이 (김 전 실장에 대해) 어려운 분이고 어르신이라고 표현했으므로 (두 사람이) 직접 알지는 못한다고 속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대면 보고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에는 "지금은 아쉽게 생각한다"고 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질의에는 "있을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김 전 실장은 "대통령 3차 담화에 조언을 했느냐"는 질의에도 "전혀 그런 적 없다"고 했다.

고(故)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세월호 시신 인양을 포기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질의에는 "그렇게 얘기한 일이 없다"며 "저도 지금 자식이 죽어 있는 상태인데, 왜 시신 인양을 하지 말라고 하겠느냐"고 했다.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의 2013년 7월 말 '저도 휴가'에 최순실과 동행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2013년 7월 15일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서 16일에 전립선(비대증) 수술을 받고 19일에 퇴원한 뒤 8월 3일까지 집에서 안정을 취했다"고 했다. 한편 김 전 실장은 이날 증인으로 함께 채택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불출석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의에 "저도 건강이 안 좋은데 심장에 스텐트도 7개나 박혔고 어젯밤에도 통증이 와서 입원할까 했지만 국회가 부르는 건 국민이 부르는 것이라 생각하고 나왔다"며 "당연히 진술해야 한다"고 했다.

◇여야 의원들, "거짓말 말라" 고성

의원들은 김 전 실장이 관련 의혹에 관한 질의에 부인으로 일관하자 비판을 쏟아냈다.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세월호 7시간' 관련 질의를 하던 도중 "제가 웬만해선 거친 이야기를 안 하는데 김기춘 당신께서는 죽어서 천당 가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반성 많이 하시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질의를 하며 "사람은 다 죽는다"며 "어떻게 보시려고 하냐"고 했다. 같은 당 안민석 의원은 "대한민국 5000만명 어느 한 사람도 김기춘을 두둔하거나 동정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며 "부인도 모른다고 할 사람이니 '왕실장' 대신 '오리발 실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겠다"고 했다.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은 최근까지도 최순실의 존재를 몰랐다는 김 전 실장을 향해 "텔레비전도 안 보냐. 거짓말 좀 하지 말라"고 했고, 여당 의원들도 수차례 "국민 앞에 진실을 말하라" "이런 식이라면 국민의 공분을 살 뿐"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