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조성진이 조곤조곤 우아한 목소리로 본인의 음악적인 행보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의 인기는 아직도 식을 줄을 모르고, 최근 생애 첫 스튜디오 녹음 앨범을 발매했다.
‘조성진 신드롬’이라는 말이 생겼다. 아이돌 음악이 주를 이루고 있는 국내 음악시장에 클래식 음반으로는 이례적으로 예약판매 1위를 기록했고, 콘서트 티켓은 예매를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매진된다. 국내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야말로 붐을 일으킨 주인공인 조성진은 새롭게 탄생한 한국의 문화 파워 브랜드다.
그런 그의 첫 스튜디오 녹음 앨범이 출시된다. 역대 쇼팽 콩쿠르 우승자들의 계보를 잇는 거장으로서의 첫걸음이라는 의미를 지닌 앨범이다. 지난해 콩쿠르 우승을 이끈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발라드 4곡이 담겨 있다. 국내에서 발매되는 앨범에는 특별히 ‘녹턴 20번’이 추가로 수록된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지휘자 지아난드레아 노세다와 호흡을 맞춘 결과물인 이 앨범은 조성진의 스타성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이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들은 우승과 동시에 음반 발매를 하게 되고 쇼팽 콩쿠르의 역사와 함께 기록된다. 조성진은 스물두 살 어린 나이에 레이블 전속으로 음반을 발매하게 됐다. 역대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계보를 잇는 행보라고 평가받고 있다.
첫 앨범 발매 소감은?
6월에 런던에서 쇼팽 콘체르토 녹음을 했고, 9월 말에 함부르크에서 4개 발라드를 마저 녹음했다. 런던에서 녹음한 장소는 애비 로드 스튜디오로, 비틀스와 카라얀이 녹음을 했던 공간이다. 위대한 음악가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 걸 보면서 설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랬다. 생애 첫 스튜디오 녹음이라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라서 약간 긴장했다. 콘서트는 콘서트대로, 녹음은 녹음대로 매력이 있다고 느꼈다.
에피소드도 많았을 텐데.
발라드 녹음을 3일 동안 했다. 15시간 정도. 첫째 날에는 발라드 3·4번, 둘째 날에는 1·2번을 11시간, 12시간 정도 해서 녹음을 마쳤다. 마지막 날에 정리를 해보자는 마음이 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쳐봤다. 지금 앨범에 들어 있는 버전은 마지막 날 마지막 연주다.(웃음) 내가 느낀 게 많다. '이제 다 됐다' 하고 긴장을 안 하고 연주를 하니까 더 잘되더라는 것이다. 다음에 녹음할 때는 이걸 참고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개인적으로 솔로 레코딩이 콘체르토보다 더 힘들었다. 콘체르토는 주위에 사람도 많고 그래서 호흡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솔로 스튜디오 레코딩은 큰 스튜디오 안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려다 보니 외롭기도 했고 고립된 느낌도 있었다.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어떤 점에 신경을 쓰면서 레코딩을 했는지?
쇼팽 콩쿠르 이후 쇼팽 협주곡을 많이 연주했다. 지난달 미국에서 연주한 것까지 합하면 50번 넘게 연주했다. 그러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는 위험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 제일 신경을 썼다. 처음 연주하는 듯한 프레시한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클래식 음악에서 제일 힘든 것 중 하나가 어떤 것이 더 좋은 연주인지 평가하는 것이다. 음악은 설명하기 힘들 때도 있고, 텔레비전이나 핸드폰처럼 기능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교하면서 평가를 하는 게 힘들다고 생각한다.
지휘자 노세다와는 어땠는지?
마에스트로 노세다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월 파리에서다. 베르디 레퀴엠은 내가 들은 가장 좋은 연주였다. 막연하게 이분과 언젠가 연주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몇 달 뒤에 기회가 생겨서 기뻤다.
스튜디오 음반에 처음으로 도전하면서 개인적으로 성장한 부분이 있는지?
연주를 하면서 같은 곡을 여러 번 반복해서 연주할 때가 많았다. 어떤 사람은 지루하지 않으냐고 물어보는데, 오히려 더 재미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거나 내 연주가 느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쇼팽 콘체르토를 50번 정도 연주를 했는데 이제야 이 곡이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적어도 50번은 연주를 해야 이해를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다음 앨범도 준비하고 있나?
드뷔시를 생각하고 있다. 내년에 녹음할 예정이다.
불과 1년 사이에 조성진의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쇼팽 콩쿠르 이후 연주회 일정이 쏟아졌고, 매니지먼트 음반사와 계약도 했다. 이제 조성진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다.
쇼팽 콩쿠르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콩쿠르 끝난 지 1년이 지났는데, 얼마 살진 않았지만 살아온 중 가장 빠르게 지나온 한 해였다. 달라진 점은 전보다 이메일이 더 많이 온다는 점?(웃음) 유명세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진 않고 가끔 있긴 한데, 인생이나 일생이 변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변하진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크게 바뀐 적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원하는 연주를 많이 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바뀌긴 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콩쿠르 이후 매니지먼트 음반사 결정이 힘들었다고 들었다.
런던에서 11월 초에 연주를 했었는데, 계약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30페이지짜리 계약서를 받았다. 계약서 협상은 안 해봐서 변호사에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사실 내 인생에서 변호사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었다.(웃음) 매니지먼트사 정하기가 어려웠는데, 일본에서 만난 지베르만이 "너의 직관을 믿어라"라고 조언을 해줘서 선택하게 됐다.
조성진에게 쇼팽은 어떤 존재이자 의미인지?
쇼팽으로 우승하기 전부터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좋은 기회를 준 작곡가다. 쇼팽의 곡을 여러 곳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의미 깊은 작곡가다. 앞으로도 쇼팽의 곡을 많이 연주하고 공부하면서 연주활동을 하고 싶다.
쇼팽 이외에 다른 작곡가들의 연주도 들을 수 있나?
올해는 쇼팽 콘체르토 외에 라흐마니노프의 곡으로 연주 계획이 많이 잡혀 있다. 내년부터는 쇼팽 연주 횟수가 줄어들 것 같다. 베토벤 콘체르토도 연주할 계획이다. 아직 안 해본 쇼팽도 앞으로는 연주할 예정이다.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연주를 쏟아내는 조성진의 나이는 22세다. 그야말로 인생에서 청춘으로 불리는 시기. 일상의 조성진 역시 음악 속에 파묻혀 있지만, 친구들이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교류하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일상의 조성진이 궁금하다.
다른 연주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상이 심플하다. 연주를 안 할 때, 연습을 서너 시간 정도 집에서 한다. 파리에 사는데, 아파트에서는 이웃 문제도 있고 해서 연습을 못 한다. 약속이 없으면 집에서 저녁 먹으면서 인터넷을 할 때도 있고, 영화를 볼 때도 있고, 산책을 나갈 때도 있다. 그런데 쇼팽 콩쿠르 이후에는 파리에 있는 동안 매일 저녁 약속이 있었다. 친구들이나 사람들을 만나러 나간다.
22살은 인생에서 청춘의 시기로 불리는 나이다.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다. 남들은 대학생활을 하면서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는데 부럽지 않으냐, 다른 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진 않으냐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음악을 하시는 분들이고 음악에 관계된 분들이다. 내가 봤을 때는 그 (질문하신) 분들이 특별한 삶을 사는 것이고, 오히려 음악가의 삶이 평범하게 느껴진다.(웃음) 청춘의 꿈, 이런 건 딱히 없다. 지금 하는 일이 좋고,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것이다.
클래식 말고 다른 음악도 좋아하나?
주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그 외에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면, 퀸이라는 밴드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교육이 궁금하다.
부모님은 나를 압박하신 적이 없다. 엄마는 내가 피아노를 끝까지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그만두고 싶을 때 언제든지 그만두라고 고등학교 때까지 말씀하셨다. 콩쿠르 나가면서 힘들어하는 것을 보시니까, 항상 즐기면서 하라고 하셨다.
큰 연주가 많아서 힘들고 압박감도 클 것 같다. 마인드 컨트롤은 어떻게 하나?
성격이 원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은 아니다. 긍정적이다.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많은 연주 러브콜을 받고 있을 텐데, 해야만 하는 연주 아니면 해야 할 연주가 있다면?
해야만 하는 연주는 잘 모르겠다. 프랑스에 있는 매니저가 이런 결정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내 꿈 중 하나는 카네기 홀에서 리사이틀을 하는 것이었다. 메인 홀도 아니고 두 번째 홀에서 리사이틀에 초청될 수 있을까 막연하게 상상했는데, 작년 이맘때 메인 홀 초청을 받아서 놀랐다.
또 다른 목표를 만들어야겠다.
사람이고 목표를 하나 이루고 보니 또 욕심이 생긴다.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연주자라면 한 번쯤 꿈꿔보는 베를린 필이나 비엔나 필과 협연을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새로운 목표다. 정확하게 세어보진 않았지만 2017년에는 80번 정도 연주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는 어떤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나?
내년 1월에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할 예정인데 카네기홀에서 할 연주를 할 계획이다. 5월에는 통영 리사이틀이 있다. 모차르트, 드뷔시, 녹음한 쇼팽 발라드를 연주할 예정이다. 2017년에는 한국 연주가 많은데, 2018년 1월에 처음으로 한국 리사이틀 투어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