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1일 명동성당.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외손녀이자 정성이 이노션 고문의 장녀인 선아영 씨가 백년가약을 맺었다. 상대는 배우 길용우의 아들 길성진 씨. 다시 한 번 재계와 연예계가 만났다.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둘의 결혼식은 이전부터 화제가 됐다. 연예계와 재벌의 만남이라는 점 그리고 연애결혼이라는 게 이유였다. 재벌가는 중매혼을 하는 게 보통이다. 집안끼리 정략적인 계산이 오가는 경우도 많다. 둘은 달랐다. 두 살 터울인 성진 씨(32)와 아영 씨(30)는 일반 모임에서 만나 서로의 엄마, 아빠가 누군지 모른 채 교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알고 지낸 건 학창시절 때부터. 둘의 교제를 지켜봐온 한 관계자는 “친구 소개로 만나 오랫동안 알고 지내다가 교제를 시작했고, 결혼을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성진 씨는 배우 길용우의 외동아들로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길용우가 건물주인 이태원 경리단길의 한 건물에서 수제맥주집 남산 케미스트리를 운영하면서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영 씨는 결혼 준비 전까지 쿠킹 스튜디오를 운영해왔다고 전해진다. 현대그룹 내에서는 아무런 직책을 갖고 있지 않다.

아영 씨의 어머니 정성이 고문은 대전 선병원 설립자인 고 선호영 박사의 차남 선두훈 대전선병원 이사장과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정 고문은 올해 아들을 결혼시킨 데 이어 7개월 만에 딸의 결혼식까지 치렀다. 아들 선동욱 씨는 명동성당에서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의 차녀인 채수연 씨와 지난 4월 화촉을 밝혔다.

노현정 등 현대가 총출동, 800명 하객

바람이 조금 불긴 했지만 춥진 않았다. 결혼식 시작 한 시간 전인 정오. 하나둘 하객들이 모여들었다. 성당 길목은 제네시스 차량으로 꽉 메워졌다. 곳곳에 무전기를 든 사람들도 보였다.

대성당 앞에 서 있던 정성이 고문은 “그늘을 벗어나 서 있자”면서 옆에 서 있던 며느리 수연 씨의 손을 잡고 양지로 걸음을 옮겼다.

다소 여유로운 표정의 신부 측과는 다르게 길용우는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하객을 맞이하기에 앞서 길용우는 취재진에게 “집사람은 찍지 말아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기도 했다.

재계와 연예계의 만남인 만큼 이날 하객들은 대단했다. 명동성당을 정면에 두고 왼쪽은 현대가 하객 행렬, 오른쪽은 연예계 하객 행렬이 이어졌다. 하객들은 줄을 서서 차례로 혼주에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하기 위해 늘어선 줄은 약 40분간 끊이지 않았다.

현대가 하객으로는 정몽구 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현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 범현대가(家) 인물 등이 찾았다.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허희수 SPC그룹 부사장,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등도 참석했다. 이인제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정계 인사들도 눈에 띄었다.

재계와 연예계 하객들이 총출동했다. 왼쪽(위)부터 박상원, 임하룡, 현정은 (아래)정몽준, 안성기, 노현정.

여성 하객들은 하나같이 정성이 고문에게 “오늘 참 예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정 고문은 이날 연분홍색 치마와 흰색 저고리의 한복을 입었다. 정 고문 옆에는 지난 4월에 결혼한 선동욱 씨 부부가 함께 서 있었다. 수연 씨는 새댁답게 샛노란 치마와 곱게 수놓은 옅은 상아색 저고리를 입었다. 하객들은 수연 씨에게도 “신혼생활은 즐거우냐”는 안부를 건넸고, 수연 씨는 낭랑한 목소리로 “네” 하며 환하게 웃었다. 하객들이 뜸할 때 수연 씨는 바람에 흘러내린 정 고문의 머리카락을 올려주면서 매무새를 신경 써주기도 했다. 고부지간의 애정이 묻어났다. 정 고문은 한 하객과 인사를 나누며 “아들 보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노현정 전 아나운서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분홍색 저고리와 황토색 치마를 걸치고 환하게 웃으며 등장했는데, 남편 정대선 사장은 함께하지 않았다. 노 전 아나운서는 2012년 자녀의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사태 이후 은둔설이 돌 만큼 가족행사에 참석하지 않아왔다. 지난 2014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차녀 정선이 씨의 결혼식도 불참했다. 그러다 올해 3월 20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기일 때부터 가족행사에 모습을 다시 비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선동욱 씨의 결혼식에도 아들과 함께 참석했다.

한편 정몽구 회장은 결혼식이 열리기 약 10분 전인 낮 12시 50분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관용차에서 내리자마자 취재진은 일제히 정몽구 회장에게 달려갔다. 정 회장은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힘겹게 식장으로 향했다. 그를 둘러싼 취재진들이 대통령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무슨 얘기를 나눴느냐고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연예계 쪽에서는 이순재, 최불암, 노주현, 사미자, 김용건, 안성기, 임하룡이 신랑 신부를 축하했다. 김영철, 김미화, 배한성, 연정훈, 박상원, 정보석, 이아현, 최명길, 이혜숙 등도 참석했다.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날 양가 하객은 약 800여 명으로 추산됐다.

화환, 축의금, 답례품 생략

오후 1시에 시작된 결혼식은 50여 분간 진행됐다. 성당 결혼식이니만큼 미사 형식으로 치러졌다. 축가는 성가대가 했다. 여느 천주교 결혼식과 다르지 않았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여러 차례 했다.

식이 끝난 후에는 다소 캐주얼한 분위기가 연출돼 이목을 끌기도 했다. 신랑 신부가 식을 마치고 행진할 때 하객들이 모두 일어나 너도나도 사진을 찍었다. 친구들이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아영 씨는 이날 그야말로 베일에 싸인 신부였다. 식전 신부대기실에는 취재진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 식 종료 후에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념촬영을 위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아영 씨는 종아리까지 떨어지는 긴 면사포를 두르고 있었다. 성당 밖으로 나온 신랑, 신부는 일가친척 및 하객들과 야외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정몽구 회장은 식장 내에서 가족사진만 촬영한 뒤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야외사진은 찍지 않았다. 현대차 관계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차량에 곧바로 탑승한 뒤 귀가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아버지와 달리 결혼식 이후 야외 기념촬영에 참석했으나 취재진과는 거리를 뒀다.

이날 결혼식엔 축의금과 화환이 없었다. 하객들을 위한 답례품도 없었다. 앞선 4월 선동욱 씨 결혼식 당시에는 이름을 적은 하객들에게 분청사기를 나눠줬었다. 하지만 이번 딸 아영 씨 결혼식에는 답례품을 생략했다. 현대가 측은 최대한 검소한 결혼식을 치르겠다는 정성이 고문의 뜻이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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