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암동 맥도날드 미래형 매장 1호점은 프리미엄 버거부터 커피, 디저트까지 메뉴 폭을 넓히고, 저녁이면 ‘서비스 리더’가 음식을 직접 가져다주는 레스토랑으로 변신한다. ‘디지털 키오스크’를 설치해 원하는 음식을 쉽게 주문·결제할 수 있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크리스마스 이브. 쌍문여고 2학년 성덕선(혜리)은 친구들과 함께 압구정동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문 연 '맥도날드'로 햄버거 원정을 떠난 것! 뒤따라온 김정환(류준열)이 매장에 나타나자 소녀들은 통 크게 주문한다. "난 필레 오 피시(Filet-O-Fish)버거, 프렌치프라이 그리고 콜라!" "난 더블버거랑 콜라 큰 거랑 감자튀김이랑 아이스크림!"

'응답하라 1988'에도 등장했듯 맥도날드 압구정점은 그 시절 서울의 명물이었다. 주말이면 덕선이 같은 10대는 물론, 20~30대 남녀가 데이트를 위해 모여들었다. 인기는 200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2003년 압구정점에서 아르바이트했던 박시영(31)씨는 "주문하는 손님보다 기다리는 손님이 더 많았고, 눈이나 비가 오면 1층 계산대가 반쯤 마비됐다"고 했다. "맞은편에 대형 연예기획사도 있어 연예인들 보는 재미도 쏠쏠했죠. 당시 연습생이었던 슈퍼주니어 김희철은 맥도날드에 살다시피 했고, 앙드레 김 선생님은 경호원 10명과 등장해 '딸기선데이아이스크림' 11개를 사가기도 했어요."

1988년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한국 맥도날드 1호점(위)과 맥도날드 외관 같지 않은 상암 DMC점 입구.

응팔 시대 맥도날드의 이유 있는 변신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지금, 맥도날드는 달라졌다. 주문 카운터와 테이블 몇 개 있는 패스트푸드점이 아니다. 서울 상암동을 필두로 이른바 '미래형 매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매장 인테리어부터 다르다. 회색 메탈 소재와 따뜻한 원목 색상을 조화시켜 내부를 장식하고, 곳곳에 햄버거와 아이스크림 등 대형 픽토그램으로 악센트를 줬다. 고급 레스토랑처럼 주방도 오픈했다. 패스트푸드점으로는 최초 시도다. 빨간 투명창 너머 햄버거 만드는 직원들 손이 바삐 움직인다. 위생적인 조리 과정을 여과없이 드러내 신뢰감을 주겠다는 목적이다.

수제버거를 포함해 메뉴 폭도 넓어졌다. 계란프라이와 히코리 스모크 베이컨이 들어간 '골든 에그 치즈버거'를 비롯해 버섯의 풍미가 살아 있는 '그릴드 머쉬룸 버거', 사워크림에 태국 스리라차 핫소스로 맛을 낸 '스파이스 아보카도 버거' 등 여러 종류의 프리미엄 햄버거부터 커피, 디저트까지 다양하다.

주문대 앞에서 기다릴 필요도 없다. 직원 대신 '디지털 키오스크'를 통해 원하는 음식을 주문·결제하고, 카운터 상단 '디지털 메뉴 보드'에 주문 번호가 뜨면 음식을 받으러 간다.

저녁이면 '레스토랑'으로 변신한다. 저녁 6~8시, 결제 후 자리에 앉아 있으면 '서비스 리더'가 음식을 직접 가져다준다. 햄버거를 먹다 냅킨, 케첩이 추가로 필요하면 이 또한 서비스 리더가 해결해준다. 맥도날드는 레스토랑형 매장을 내년 상반기까지 전국 250여개 매장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맥도날드의 변신엔 이유가 있다. 웰빙 햄버거를 표방한 프리미엄 버거 열풍은 그중 하나.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햄버거 하나라도 깐깐하게 골라먹는 소비자들의 높아진 입맛도 혁신에 한몫했다. 편리와 분위기를 둘 다 추구하는 2030 '카페족'도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를 레스토랑형으로 바꾸는 데 일조했다.

정크푸드? 한국 맥도날드의 '무한도전'

맥도날드의 변신은 오래전부터 계속돼 왔다. 1992년 지금은 흔해진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차에 탄 채 메뉴를 주문하고 음식을 받아가는 매장)'를 처음 도입했다. 2005년엔 햄버거 브랜드 중 처음으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매장을 시도했다. 이듬해엔 아침 메뉴 '맥모닝'을 개발해 직장인들의 든든한 한 끼를 공략했다.

위기도 많았다. 2004년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수퍼 사이즈 미'는 신호탄이었다. 제작에서 주연까지 맡은 감독 모건 스펄록은 하루 세끼 맥도날드 메뉴만 먹었고, 한 달이 지나자 11kg 체중 증가와 함께 두통, 지방간, 성기능 감퇴라는 질병을 얻었다. 그즈음 조류 인플루엔자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광우병 파동에 웰빙 열풍까지 겹쳤다. 고객들이 하나둘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호주, 뉴질랜드산 쇠고기를 사용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압구정점은 높은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2007년 '유니클로'에 자리를 내줬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했다. 수익이 나지 않는 매장은 과감히 접고 매장 개보수에 투자했다.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 대신 인조가죽을 덧씌운 의자, 푹신한 소파를 갖췄다. 2007년부터는 전국 매장에서 사용하는 튀김유를 트랜스지방이 없는 식물성 튀김유로 교체했다. 주문 배달 서비스인 '맥딜리버리'도 시작했다. 맥도날드가 배달되는 지역을 일컫는 '맥세권'이란 신조어는 여기에서 나왔다. 정크푸드 오명을 벗을 '퀄리티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2013년 '엄마가 놀랐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전국 매장 주방을 공개하는 '내셔널 오픈 데이'를 열어 햄버거 조리 과정, 주방 위생 상태 등을 고객들에게 전부 공개했다. 2014년 업계 최초로 미국 유명 요리학교 CIA 출신 '셰프'를 영입한 것도 그 일환이다.

츄러스(왼쪽)와 애플·블루베리 파이.

츄러스 먹으러, 커피 마시러 간다

미래형 매장 1호인 상암점은 대학생과 직장인이 고객의 대부분이다.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중인 직장인 김혜성(33)씨는 야근할 때 종종 맥도날드를 찾아 시그니처 버거를 주문한다. "일반 버거와 달리 시그니처 버거는 번부터 패티, 나머지 재료까지 내 맘대로 레시피 선택이 가능해 단백질 섭취에 더없이 유용하죠." 감자튀김에 사용하는 나트륨도 20%가량 줄였다. 요즘 소비자는 감자튀김의 굵기, 시즈닝(양념)은 물론 열량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패스트푸드점을 골라 가기 때문이다.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직장인 조혜주(35) 씨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 2000원이라 가성비가 좋다"며 "츄러스를 자주 곁들이는데 주문 즉시 구워내 따뜻하고 바삭해서 맛있다"고 했다. 500원짜리 아이스크림콘은 여전히 베스트셀러. 지난해 '스몰 럭셔리' 대표 디저트인 마카롱도 출시한 바 있다.

직원들 면면도 주부, 노인, 장애인까지 다양하다. 장고운 한국 맥도날드 홍보팀 과장은 "우리는 학력, 나이, 성별, 장애 등에 차별 없는 열린 채용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끝없는 변신으로 한국 맥도날드는 2014년까지 두 자릿수 성장세를 유지했다. 글로벌 맥도날드의 '고성장 마켓' 9개국에도 선정됐다. 아시아에선 한국과 중국 두 나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