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열차가 처음 운행된 1899년 이후 117년 만에 '철도 경쟁 체제'가 도입된다. 다음 달 9일 개통하는 SRT(수서발 고속철)와 코레일의 KTX 간 가격·서비스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SRT라는 이름엔 두 가지 의미가 담겼다. 하나는 '㈜SR이 운영하는 열차(SR Train)', 다른 하나는 '시속 300㎞로 빠르게 달리는 열차(Super Rapid Train)'이다.

㈜SR은 수서~부산(하루 80회·5만2600원) 구간과 수서~광주송정(22회·4만700원) 구간, 수서~목포(18회·4만6500원) 구간을 KTX보다 평균 10% 저렴한 요금으로 운행한다. 지난 22일부터는 인터넷 홈페이지·스마트폰 앱 등을 통한 예매가 시작됐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금은 SRT의 가장 큰 강점이다. 수서~대전 구간은 2만100원으로 서울~대전 구간 KTX 요금(2만3700원)보다 약 15.2% 저렴하다. 스마트폰 앱 등으로 승차권을 구매하면 요금이 1% 할인(주말·공휴일 제외)되고, 중간에 정차하는 역이 늘어나는 만큼 또 할인해 주는 '정차역 할인제'도 마련됐다. ㈜SR은 "12월 개통 이후에 수요가 적은 열차편에 대해서는 최대 30%까지 할인을 해주는 '탄력할인 좌석 제도'를 추가 도입하고, 카드사와 협력해 별도의 마일리지 제도 등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 철도가 운영을 시작한 지 117년 만에 ‘철도 경쟁 체제’가 막을 올린다. 다음 달 9일 SRT가 개통하면, 코레일 KTX와의 치열한 가격·서비스 경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SRT와 KTX를 합친 전체 고속철 운행 횟수도 크게 증가해, 연휴나 주말 등에도 고속철 승차권을 구하기가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SRT가 경기 평택 지제역 인근에서 국내 최장 터널인 ‘율현터널’ 밖으로 달려나오는 모습

SRT만의 특징

SRT 전용 운행 구간(수서~동탄·61.1㎞)엔 철도 건설 및 운영 차원에서 새롭게 시도된 부분이 많다. 이 구간의 약 93%가 터널(율현·통복터널)이다. 율현터널은 세계에서 셋째로 길고 국내에선 최장 터널이다. 시속 300㎞급 열차가 운행하는 터널로 범위를 좁히면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이다.

선로 간격을 4.5m까지 줄인 것도 특징이다. KTX가 달리는 경부 고속선(5m), 호남 고속선(4.8m)보다 더 좁다. 선로 간격을 좁히는 방식으로 SRT 터널의 단면적을 줄여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철도시설공단 측은 "㎞당 터널 공사비가 경부 고속선에 비해 103억원, 호남 고속선에 비해 51억원 절감됐다"고 말했다.

수서역·동탄역·지제역 등 SRT 전용 정차역에도 '새로운 시도'가 많이 숨어 있다. 국내 최초로 지하에 건설된 고속철도 역사인 동탄역(지하 6층)은 연면적이 4만8986㎡나 된다. 동탄역 건설을 위해 굴착한 지하 공간은 63빌딩 5개가 들어갈 만큼 넓다. 동탄역 위로는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작업이 진행되고, 그 상부에는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SRT가 율현터널 내부를 달리는 모습
율현터널 내 수직 대피 통로

동탄역엔 고속철도 역사상 처음으로 스크린도어가 설치됐다. 소음·풍압 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열차와 스크린도어의 간격은 2m로 넓혔다. 수서역의 경우 국내 고속철도 역사 중 최초로 지하철과 지하 통로로 직접 연결돼, SRT 승객들이 지하철로 갈아탈 때 지상으로 올라왔다 다시 내려가야 하는 불편함을 없앴다.

율현터널 내부에는 평균 2.3㎞ 간격으로 대피 가능 통로 20개가 설치됐다. 이 통로를 이용하면 화재 등 재난 상황에서 열차가 정차한 위치에 따라 3~20분 이내에 대피가 가능하다고 철도시설공단 측은 밝혔다.

수직 대피 통로 16곳에는 대피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있다. 나머지 4곳은 구급차 등 차량이 직접 지하 터널 쪽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건설됐다. 지진 감지 장치, 차축 온도 검지 장치(레일의 온도 상승으로 인한 탈선 방지), 지장물 검지 장치(토사 및 낙석 확인) 등도 설치돼 있다. 강영일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은 "SRT 전용 선로 구간에 국내 최장 터널 등 새로운 시도가 많은 만큼 비상시 승객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고 말했다.

고속철 접근성 높였다

SRT가 개통되면 서울 강남·강동 및 수도권 동남부 지역 주민들의 고속철 이용이 편리해진다. 출발역인 수서역의 경우 현재는 서울 지하철 3호선·분당선 '수서역'과 지하 통로로 연결돼 있다. 지하철 3호선에서 내려 SRT 승강장까지 걸어서 5분, 수서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승강장까지는 걸어서 2~3분 정도가 걸린다. 향후 수도권급행철도(GTX) 등이 완성되면 접근성은 훨씬 좋아진다.

SRT 차량은 기존 KTX-산천 차량이 운행 중 보였던 문제점들을 모두 보완했고, 부품 대부분이 국내 생산된 명실상부한 '국산 고속열차'다. 탑승객 1명당 1개의 콘센트가 설치됐고, 기존 KTX 차량에 비해 무릎이나 발을 뻗을 수 있는 공간도 5.2~5.7㎝ 정도 더 확보했다. 특실과 일반실 일부 좌석에는 높이를 조절해 머리를 기댈 수 있는 '헤드 레스트'도 설치돼 있다. 뒤로 젖힐 수 있는 장치가 전동식으로 된 특실 좌석은 버튼으로 조절이 가능하고, 비행기처럼 수하물 보관함이 좌석 위에 설치돼 있어 편리하다. 열차 내에서 무선 인터넷도 이용할 수 있다.

(주)SR제공

SRT 승차권 예매 스마트폰 앱은 ▷지도형 출발·도착역 지정 ▷승무원 호출 메신저 ▷열차 출발·도착 전 알림 기능 등 현재 코레일 앱에는 없는 기능을 담았다. ㈜SR은 "승객들로부터 '단순히 출발·도착지가 다른 고속철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차별화된 승무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SRT 개통 이후 전체 고속철의 하루 운행 횟수는 현재보다 43%(주말 기준) 증가한다. 승객이 몰리는 주말에 승차권 구하기가 지금보다 더 수월해질 전망이다. 최근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SRT가 운행하면 연간 약 100만명이 버스·승용차 등 도로 교통수단 대신 고속철을 이용할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 정체 해소와 고속버스 통행 시간 감소 등 연간 200억원의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속철 건설과 운영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이보다 더 크다. 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SRT 전용 선로를 건설하면서 9조5000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함께 약 7만6000개 일자리가 창출됐다. SRT 전용 정차역인 수서역, 동탄역, 지제역 등의 경제 활성화 효과만 연간 약 4900억원으로 예상됐다. 온실가스와 대기오염 물질 배출 감소로 연간 62만그루 나무를 심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추정된다. 김복환 ㈜SR 대표는 “다음 달 9일은 117년 철도 역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날”이라며 “철도 경쟁 체제가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도록 최고의 철도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