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25일(이하 현지 시각)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26일 자정이 지난 직후 국영 TV에 나와 "쿠바 혁명의 최고 사령관이 25일 밤 10시 29분에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고인의 뜻에 따라 화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인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2006년 장출혈 수술 이후 건강이 악화된 데다 고령으로 쇠약해진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25일(현지시간) 밤 타계했다고 주요 외신들이 쿠바 현지 언론을 인용해 일제히 보도했다.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타계 ]

쿠바 정부는 이날부터 9일 동안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카스트로의 유해는 26일 화장을 거쳐, 수도 아바나에서 고향인 동부 지역의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 전국을 순례하는 운구 과정을 마친 뒤, 다음 달 4일 고향의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에 안장된다.

카스트로는 1959년 1월 혁명으로 풀헨시오 바티스타 친미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 정권을 세운 뒤 2008년 건강을 이유로 은퇴할 때까지 49년간 쿠바를 통치했다. 1976년까지는 총리를, 이후에는 국가평의회 의장을 맡았다. 20세기 이후 각국 지도자 중 전제 군주를 제외하곤 최장의 통치 기록을 세우며, '위대한 혁명가'라는 찬사와 '야만적 독재자'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17년 경호원이 폭로한 쿠바 카스트로의 이중생활]

사망 후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카스트로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26일 아바나의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았고, 거리의 음악 소리도 끊겼으며 대학생들은 캠퍼스에 모여 쿠바 깃발을 흔들며 "피델 만세, 라울 만세"를 외쳤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반면,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리틀 아바나' 등 쿠바계 주민 밀집 지역에서는 쿠바계 주민 수천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폭죽을 터뜨리는 등 축제 분위기였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카스트로 집권 후 50만명 이상이 쿠바를 탈출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1926년 스페인 출신 이주민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카스트로는 변호사로 활동하던 1953년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실패하면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후 특사로 석방된 그는 곧바로 멕시코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체 게바라를 만나 게릴라 조직을 결성하고 쿠바 정부 전복에 나서 1959년 1월 마침내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렸다.

집권 후 토지개혁, 민간기업 국유화, 외국자본 몰수 등 공산화 정책을 추진한 그는 미·소 냉전 체제하에서 소련을 추종하며 서방과 맞서다 1961년 미국과 국교를 단절했다. 1962년 10월에는 구소련의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다 미국과 일촉즉발의 대결 상황까지 가는 '미사일 위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카스트로의 그림자가 사라진 쿠바는 개혁·개방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라울 카스트로의 실용적 개혁 노선이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쿠바 역사학자 엔리케 로페스 올리바는 뉴욕타임스에 "카스트로의 죽음은 한 시대의 끝이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며 "라울이 더 많은 자유를 갖게 되면서 변화 과정이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좌)피델 카스트로와 (우)라울 카스트로

올해 85세인 라울이 공언한 대로 오는 2018년 권좌에서 물러나면 차기 권력을 놓고 혁명 세대와 비혁명 세대 간 충돌이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쿠바 권력 서열 2위인 미겔 마리오 디아스-카넬 베르무데스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은 올해 56세로, 쿠바 혁명에 참가하지 않은 세대다. 미국 연구기관인 '인터-아메리칸 다이얼로그'의 마이클 시프터 회장은 "권력층 내부에 분쟁과 대립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더보기

'제2의 쿠바' 꿈꿨던 南美 국가들, 줄줄이 경제 파탄

'남미 사회주의 혁명'의 아이콘이었던 피델 카스트로는 이웃 국가들에 열정적으로 좌파 혁명을 수출한 인물이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1968년 보고서에서 '남미 국가들을 제2의 쿠바로 만들려는 강박증이 있는 혁명가'라고 표현했다.

1970~1980년대 쿠바에는 이처럼 '카스트로주의(Castroism)'를 배우고자 하는 남미 좌파 혁명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반군 게릴라 조직 '몬테네로스', 1970년 사회주의 정권을 세웠지만 3년 만에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전 대통령, 1964년 콜롬비아에서 창설된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등이 모두 카스트로의 영향을 받았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도 카스트로의 '정치적 제자'를 자처했다. 현재 집권하고 있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등도 카스트로 계보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도입한 카스트로주의는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포퓰리즘적인 무상 복지 정책으로 국가 재정이 바닥났고, 내전으로 경제 발전이 지체됐으며, 부패가 판을 쳤다는 것이다.

세계 석유 매장량 1위 국가이자 한때 남미 최고의 부국(富國)이었던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집권기를 거치며 경제가 파탄났다. 2001년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던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말 결국 좌파 정권에서 우파 정권으로 교체됐다. 콜롬비아의 FARC는 52년 동안 내전을 벌이며 22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최근 정부와 평화협상에 합의했지만 "피해 유족에게 사죄부터 하라"는 국민들의 반감이 거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대다수 베네수엘라 국민은 피델 카스트로가 국가 경제를 수렁에 빠뜨리는 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야만적 독재자", 시진핑 "위대했던 인물"

피델 카스트로(90)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은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26일(현지 시각)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역사는 한 인물이 주변에 미친 영향을 기록하고 판단할 것"이라면서 "쿠바인들은 미국에 그들의 친구와 파트너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야만적인 독재자(brutal dictator)'라고 평했다. 트럼프는 이날 성명에서 "카스트로의 죽음은 (쿠바인들이) 너무 오랫동안 참아야 했던 공포에서 벗어나는 계기"라며 "우리(미국 정부)는 쿠바인들이 자유를 향한 여행을 시작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 전했다.

쿠바 출신 美 이민자들은 축제 - 26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쿠바 출신 주민들이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사망 소식을 듣고 쿠바 국기를 흔들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현재 200만명으로 추산되는 쿠바계 미국인 가운데 140만명 정도가 플로리다주에 거주하고 있다.

[駐쿠바 미국 대사 55년 만에 생긴다]

[오바마 "헬로, 쿠바"… 美대통령 88년만의 방문]

사회주의권 국가 지도자들은 혁명가 카스트로의 공(功)을 높이 평가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관영 CCTV 방송 연설에서 "카스트로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인물로 역사와 인민이 기억할 것"이라며 "그의 웃는 모습과 목소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중국 인민은 진실한 친구를 잃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이날 조전(弔電)에서 "카스트로와 동지들이 건설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나라 쿠바는 많은 국가와 국민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밝혔다.

카스트로의 영향을 받은 남미 좌파 지도자들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그는 우리들의 형님이었고 자유와 자주독립과 평등의 꿈을 심어준 인물이었다"고 했고,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트위터에 "우리는 독립과 사회주의, 그리고 조국을 위한 그의 유산과 깃발을 이어가야 한다"고 썼다.

"오늘이 마지막"… 90세 피델 카스트로, 깜짝 고별사

'쿠바 혁명의 상징'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는 2016년 4월19일,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공산당 제7차 전당대회 폐회식에 이례적으로 참석해 연설했다. 그는 "나는 곧(8월) 아흔 살이 된다"며 "나도 다른 사람들과 같아질 것(세상을 떠날 것)이고, 시간은 모두에게 찾아온다"고 말하는 등 여러 차례 죽음을 암시했다. AP, 뉴욕타임스 등은 그의 연설을 '고별사'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날도 평소처럼 푸른색 '아디다스' 트레이닝복 상의를 입고 나왔다. 고령에 건강도 좋지 않은 그의 목소리는 작고 힘이 없었지만, 쿠바의 공산주의 정신은 영원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쿠바의 공산주의 사상은 열정과 품위를 가지고 일하면 인간이 필요로 하는 물질적·문화적 산물을 얻을 수 있다는 증거로서 지구 상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고 했다. 1000여 명의 대표단은 "피델! 피델!"을 연호했고, 일부 참석자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국영TV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다양한 색상의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은 피델 카스트로(89) 쿠바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모습.‘ 군복’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그는 2006년부터 아디다스 운동복을 즐겨 입는‘아디다스맨’으로 변신했다.

[카스트로, 못말리는 아디다스 사랑]

피델은 지난해 7월 이후 9개월간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영향력은 막강하다. 지난 3월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후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미국의 선물은 필요 없다"는 글을 기고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공산주의의 정신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기사 더보기

빗장 연 쿠바, 끓어오르는 희망을 보다

1959년 혁명 이후 쿠바는 꽤 오래 잘나갔다. 하지만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쿠바 역시 추락했다. 아이러니와 모순이 혼재하는 나라.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변호사와 의사와 혁명 박물관 집표원의 월급차이가 거의 없는 나라. 외국인용 택시기사와 민박 주인은 달러와 유로를 쓸어담는다는데, 그럴 능력이 없는 공무원들이 느끼는 열패감이란.

인그라테라호텔 앞에 도열한 외국인 관광객용 올드 클래식 택시들. 뷰익 시보레 캐딜락 폰티악부터 핑크 라임 오렌지 블루 등 브랜드와 색의 향연이다.

하지만 카스트로 정권이 고민 끝에 열었다는 빗장은 쿠바 젊은이들에게는 희망의 상징으로 보였다. 미국과의 국교 회복과 함께 2015년 4월 서비스를 시작한 숙박 공유 사이트 에어비앤비(Airbnb)에는 1년만에 5500가구가 회원 가입을 신청했다고 한다. 작년 한 해 1만3000명의 미국인이 이 사이트를 통해 쿠바에서 묵었고, 올해 3월부터는 다른 나라 국민들도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도 신용카드도 없었지만, 반짝거리는 열정이 이 안에 있다. 뒤늦게 자본주의를 시작하지만, 아직은 오염되지 않은 쿠바. 그 숱한 아이러니와 딜레마 극복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다시 비바 쿠바 리브레!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