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학이 된 사나이
오한기 지음|문학동네|180쪽|1만원
왜 홍학이냐고? 그냥 홍학이다.
단순하게 보면 그저 자신이 홍학이라 믿는 남자의 일화다. 죽은 외삼촌이 물려준 펜션에 사는 남자. 몸을 마구 긁어 홍학의 색깔을 만들고, 날갯죽지를 흔들며 홍학의 세계에 침입하는 남자. 그러다 동물원 암컷 홍학(너)을 사랑하게 되고, 근처 저수지에서 미아 여자애(DB)를 발견하면서 더욱 홍학이 돼간다. 남자는 사랑하는 암컷들을 위협하는 햄버거 가게 주인이 물수리라고 생각한다.
2012년 등단해 주목받는 신인의 첫 장편 소설. 난해한 시를 연상시키며, 기묘하게 논리적이면서도 열린 해석을 장려하는 소설. 그러니 이건 예술과 의미·무의미에 대한 소설일 수 있다. 길에서 만난 교수가 남자에게 "우울증은 자기기만이며 어쨌든 네 소설은 별로 안 좋다"고 말하는 대목, "좋은 소설은 무엇이고 나쁜 소설은 무엇이냐"고 따져 묻는 대목이 힌트일 수 있다. 이 해석은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미쳤으며 우울하다. "며칠 뒤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교수는 광기와 우울은 전염되니까 조심하라고 했다."
묘사 대신 행동과 발화, 상징과 환각. 젊은 작가군의 전위적 글쓰기가 못마땅하다면 읽기가 힘들 수 있다. 단어를 단순 나열해 햄버거 모양을 만드는 게 장난 같을 수 있다. "문학에 의미가 있다면 이 글은 문학이 아니다. 무의미를 기록하는 것도 문학이라면 이것은 문학이 아니다."
소설은 총 33장(章). 각 장은 짧으면 한 쪽, 길어야 여덟 쪽이고 제목도 있다. 문단이 아니라 연과 행으로 이뤄진 대목도 여럿. 이 소설은 시일까? 저자는 "그렇다"고 말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