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 동기(同期)가 남자들 군대 동기보다 훨씬 끈끈해요."
서울 강남구에 사는 주부 신정현(35)씨는 지난 2013년 10월 첫딸을 출산한 뒤 집 근처 산후조리원에서 2주간 머물렀다. 그곳에서 신씨는 다른 산모 4명을 알게 됐다. 신씨는 "출산이라는 큰일을 비슷한 시기에 겪은 데다 갓 엄마가 돼서 같은 고민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금세 친해졌다"고 말했다. 이들 5명은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신씨와 같은 방을 썼던 구하림(32)씨는 "산후조리원에서 친하게 지내도 퇴원하면 얼마 안 가 연락이 뜸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생년월일이 비슷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유대감이 강해서인지 웬만한 친구들보다 더 자주 만난다"고 했다.
산후조리원 동기들끼리 뭉치는 젊은 엄마들이 늘고 있다. 특히 혼자 육아를 감당하기 힘든 맞벌이 엄마들이나 초보 엄마들 사이에서 이 같은 모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조리원을 나온 뒤에도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연락을 주고받고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며 육아 정보를 공유한다. 유모차나 장난감 같은 육아용품을 공동 구매로 구입하거나 돌잔치도 함께 치러서 돈을 절약하기도 한다.
3년 전 첫아들을 낳은 강진경(29·대전 서구)씨는 "주변 친구들보다 일찍 아이를 낳은 편이라 육아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가 별로 없어 걱정이었는데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동기 언니들로부터 많은 육아 정보를 얻고 있다"며 "아이에게도 생일이 비슷한 5명의 쌍둥이 같은 친구들이 생겨 든든하다"고 말했다. 맞벌이 회사원인 강씨는 "야근이나 회식이 잡히면 동네에 사는 동기가 아이를 돌봐줄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했다. 강씨는 얼마 전 조리원 동기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출산 3주년 기념으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고, 전문 사진사에게 의뢰해 단체 기념사진도 찍었다.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이 품앗이 육아나 품앗이 과외 형태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 사는 주부 조하영(33)씨는 "같은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동기 10명 중 7명이 보육교사 자격증이 있다"며 "덕분에 유치원에 보내기 전까지 엄마들끼리 돌아가면서 영어, 미술, 피아노, 중국어 등을 가르치는 품앗이 과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임신 13주 차인 염정민(29)씨는 "'산후조리원 동기가 있어야 나중에 육아에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아이 인맥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을 주위에서 여러 번 들었다"며 "산후조리원도 독실이 아닌 단체실이 마련된 곳으로 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재 등록된 전국 산후조리원의 수는 610곳이다. 2012년 말 478곳보다 27.6% 늘었다. 산부 10명 중 6명이 산후조리원을 이용할 정도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전 마을 단위로 흔히 이루어지던 품앗이 육아 문화가 사라질 뻔했는데 산후조리원이라는 다른 형태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며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이 핵가족 시대의 새로운 육아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입력 2016.11.24. 03:00업데이트 2016.11.2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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