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국정에 복귀하고 여야의 탄핵 논의도 정당별 이견으로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서 "개헌을 통한 임기 단축으로 해법을 찾자"는 의견이 늘고 있다. 하야(下野)나 탄핵 같은 '경착륙' 대신 대통령과 국회 모두 명분 있는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지만, 문재인·안철수 등 야권 주요 대선 주자들이 개헌에 부정적인 것이 장벽이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개헌·퇴진 연계론
정치권에서는 여야 비주류 의원들을 중심으로 분권형 개헌이 논의됐지만 '최순실 게이트' 와 지난달 24일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 이후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하지만 12월부터 시작될 '최순실 특검' 결과가 내년 3~4월에 나오고, 국회가 당장 탄핵안을 의결해도 헌법재판소 심판 결과 역시 최장 6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에서 개헌론이 다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8일 당 회의에서 "개헌이 답이다. 이 어려움을 풀 수 있는 해답 역시 헌법 개정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며 "국민적 동의를 토대로 새 헌법을 만든 뒤 그 헌법에 따라 박 대통령의 임기를 조정할 수 있다"고 했다. 190여명 여야 의원들이 소속된 국회 개헌추진 모임의 새누리당 간사 권성동 의원은 "개헌의 최적기가 바로 지금이라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한다"고 했다.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주 "개헌을 하고 조기 대선을 치르면 박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탄핵된 대통령으로 기록되지 않고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다"며 "박 대통령 퇴진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대통령 임기를 단축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탄핵 소추가 여의치 않다면 임기 단축 개헌 등 국민 탄핵의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김종인 민주당 의원 등도 개헌에 찬성한다.
지난 9월 김원기·임채정·김형오 전 국회의장 등 여야 주요 원외(院外) 인사 150여명이 모인 '나라 살리는 헌법 개정 국민주권회의' 측도 "가능성 낮은 하야·탄핵 대신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개헌을 하자"고 했다. 개헌과 대통령 퇴진을 연계해 '합법적인 대통령 임기 단축에 의한 퇴진'이라는 명분을 대통령에게 주자는 것이다. 모임의 간사인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은 18일 본지 통화에서 "1987년 6공화국 개헌 때도 국회의원 임기를 단축시킨 전례가 있다"며 "같은 선출직인 대통령의 임기도 개헌을 통해 단축시킬 수 있다"고 했다. 새 헌법 발효 시기를 내년 상반기로 하고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부칙을 삽입하자는 주장이다.
◇대통령 '명분' 지켜주는 방법으로 거론
1987년 10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면서 그해 12월 16일 13대 대선, 1988년 4월 26일 13대 총선이 치러졌다. 12대 총선이 1985년 2월 12일 실시된 것을 감안하면 12대 의원들은 개헌이 되면서 4년 임기 중 10개월을 단축한 셈이다. 헌법 제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돼 있다. 이 때문에 이 조항을 문제 삼아 "현직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개헌은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 전 장관은 "해당 조항은 장기 독재를 막기 위해 1980년 개헌 때 추가된 것"이라며 "'임기 단축'도 못하게 하려면 '임기'라고만 하면 되지 굳이 '임기 연장'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 임기 연장 때만 문제가 되고 임기 단축은 상관 없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의 해석"이라고 했다.
하지만 야권 유력 대선 후보인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등이 개헌에 소극적이다. 야권 다수는 '개헌으로 현재 투쟁 분위기를 방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문 전 대표와 가까운 민주당 의원은 "지난 촛불 집회에 나왔던 국민의 바람은 박 대통령의 퇴진이지 권력 구조 논의가 아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