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J와 요니P가 처음 만난 건 20년 전인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스티브J&요니P’라는 브랜드를 설립해 첫 패션쇼를 마치고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던 게 9년 전 일이다. 지금 그들은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부부 디자이너다. 밋밋하거나 평범한 옷은 한 벌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유쾌하고 재미있는 옷을 만들고, 자신들의 삶 역시 즐겁고 흥미진진하게 디자인한다. 부모님 앞에서 꽃반지 나눠 끼고 결혼식을 올린 지 7년째. “같은 꿈을 향해 치열하게 달려온 전우이자 솔메이트(soulmate)”라는 두 사람을 고양이들이 유유히 돌아다니는 서울 신사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지난달 서울 청담동에서 열린 '스티브J&요니P'의 2016 겨울·2017 봄 컬렉션은 스타들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배우 정려원과 톱모델 한혜진·이영진·강승현·아이린 등이 런웨이를 장식했고 쇼가 끝난 뒤엔 이하늬·박시연·손담비·씨스타 보라·시크릿 전효성 등 숱한 연예인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스티브J·요니P 부부와 인증샷을 찍고 돌아갔다.
콧수염과 금발 머리. 방송인 노홍철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제나 뜨거운 형과 신나는 누나'. 디자이너 스티브J(본명 정혁서·39)와 요니P(배승연·38)는 국제적으로 성공한 디자이너 듀오이자 셀러브리티와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패션 브랜드다. 조용하고 느긋한 남편과 유쾌하고 통통 튀는 아내가 지난 10년간 서로를 의지하고 응원하면서 개성 넘치고 자유분방한 옷을 함께 만들어왔다. 쇼를 끝내고 동해로 서핑하러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부부를 서울 신사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패션으로 드라마를 만들다
-이번 쇼 형식을 '패션 드라마'로 정한 것이 신선했다.
"외로운 현대인이 꽃으로 위로받는 과정을 표현하려 했다. 플로리스트가 무대에 올라 꽃을 다듬고, 정려원씨가 꽃을 그림으로 그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옷은 발목까지 오는 길이나 밀리터리 같은 남성적 느낌에 러플, 꽃무늬 등 여성적 요소를 덧붙였다."(요니)
-연예인과 대중 가릴 것 없이 스티브J&요니P에 열광한다. 패션 전공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 1위로도 뽑혔다. 이유가 뭘까.
"글쎄. 트렌드를 민감하게 반영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뭔가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하고, 다음엔 또 무슨 일을 벌일지 궁금해서?"(요니)
-두 사람이 자신들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걸고, 다양한 취미 생활과 앞서가는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선보이면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고 증명해왔다. 요즘은 무엇에 관심이 있나.
"최근 집을 이사했다. 벽에 걸 그림을 직접 그리고 소품까지 일일이 고르다 보니 인테리어에 엄청난 관심을 갖게 됐다. 지하는 아예 보드를 탈 수 있는 놀이터로 꾸몄다."(스티브)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다음 시즌 컬렉션에 반영될까.
"분명히 그럴 것 같다."(스티브)
현재 스티브J&요니P는 전 세계 20개국에 진출해있다. 이들은 최근 토크쇼 '택시'에 출연해 연 매출이 240억원을 넘는다고 밝혔다. '금수저 아니냐'는 질문에 이들은 대학(한성대 의상학과) 시절 처음 만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20년 세월을 이야기했다. 국내 대기업에 합격했던 스티브는 신체검사에서 적록색약이란 사실이 밝혀져 디자이너로 취업할 수 없게 되자 영국 유학을 떠났다. 요니도 영국 패션스쿨 유학 시절 식당에서 감자 깎기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를 벌었다. 마구간을 개조한 건물을 두 사람의 공동 작업실 겸 집으로 쓰면서 밥 먹듯이 밤을 새워가며 힘든 시기를 버텼다.
길이 막혔다고 주저앉지 않았다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명문고에 진학했지만 적응 못 했고, 입시 미술도 나랑 맞지 않았다. 동대문에서 장판 깔고 브레이크댄스 췄다. 반면 요니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반장을 하며 친구들을 몰고 다녔다고 한다. 대학 시절 나는 강의실 맨 뒤, 요니는 맨 앞에 앉는 학생이었다."(스티브)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나.
"대학교 2학년 때 쪽지 한 장을 받았다. '내일 동물원 갈래? 혁서'라고 써 있었다. 늘 말없이 춤만 추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가슴이 뛰었다. 다음 날 동물원에 호피 무늬 옷을 입고 갔다. 나랑 같이 다니기 창피했다고 하더라."(요니)
-서로 남다른 재능을 일찍 눈치챘나.
"스티브는 집중력과 몰입 능력이 대단했다. 뭐 하나를 일단 시작하면 반드시 끝장을 보더라."(요니)
"요니만큼 열정적이고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지금도 밤마다 '다음 날 뭐 입을까' 생각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스티브)
-공동 브랜드를 만들 생각은 어떻게 했나.
"이미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나중에 꼭 같이 활동하자고 약속을 해놨다. 졸업도 하기 전에 '혁서의 요니'라는 뜻으로 'H's Yoni'라는 브랜드를 지어내 덜컥 사업자등록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민망한 이름이지만."(요니)
-언제 가장 힘들었는지.
"돈이 다 떨어져 영국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가려 했을 때 기적처럼 디자이너로 취업이 됐다. 의류 박람회에 나가 사흘 동안 옷을 단 한 장도 못 팔았는데 마지막 날 영국 유명 편집매장 톱숍으로부터 입점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힘들고 절망적이었던 건 지원금이 바닥나 쇼를 더 이상 열 수 없게 됐을 때다. 디자이너로서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기적적으로 다시 길이 열렸다."(스티브)
-그런 기적이 어떻게 연거푸 일어났을까.
"길이 막혔다고 그냥 주저앉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든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했다. 쇼를 못 하게 됐을 땐 고심 끝에 인형에 우리 옷을 입혀 전시를 열었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포기하지 않고 달려왔다는 것에 대해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우리가 원래 좀 긍정적이다."(요니)
춤과 스포츠에 빠진 디자이너
-스티브J&요니P 디자인은 역동적이고 위트가 넘친다. 그 에너지를 다 어디서 얻나.
"스포츠! 스티브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춤은 물론이고 스케이트보드, 롱보드, 요가, 서핑 등등 다양한 스포츠를 꾸준히 취미로 즐겨왔다. 디자이너 중에 우리처럼 운동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다."(요니)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예전과 뭔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나.
"삶의 밸런스를 추구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엔 1층에 작업실, 2층에 집을 만들어놓고 밤낮없이 일에만 매달렸다. 일에 찌들어 버리니까 일이 오히려 안 풀렸다. 요즘은 최소한 밤은 새우지 않는다. 일과 그 외의 삶을 철저히 분리할수록 일의 능률이 훨씬 높아지더라."(스티브)
-20년 전 캠퍼스 커플로 만나 동업자이자 부부로 거의 온종일 함께 지내왔다. 서로 좀 지겨울 법도 한데.
"우린 요즘도 쉴 새 없이 수다를 떤다. 물론 주말엔 각자의 시간도 갖는다."(요니)
-그래도 서로 생각이 다를 땐?
"우리가 각자 성장한 뒤에 만났다면 아마 벌써 쪼개졌을 것 같다. 어렸을 때 만나 함께 크는 과정에서 공유해온 것들이 워낙 많다 보니 생각의 방향이 이미 상당히 비슷하다."(요니)
"그래도 의견이 갈릴 땐 보통 제가 이분(요니)을 많이 따르지요."(스티브)
"음… 네, 그런 것 같네요. 남들도 다 그렇지 않나요?"(요니)
스티브J&요니P 프로필
스티브J(본명 정혁서·1977년 8월생)
2006년 센트럴 세인트 마틴 아트스쿨 졸업
요니P(본명 배승연·1978년 1월생)
2007년 런던패션칼리지 졸업
스티브J&요니P
2007
스티브J&요니P 론칭, 영국 톱숍 입점, 런던패션위크 데뷔
2010
브랜드 한국 이전, 올해의 디자이너상 (지식경제부장관 표창)
2015
SK네트웍스가 브랜드 인수. 현재 전 세계 20개국 백화점·셀렉트숍 입점
(영국 리버티, 프랑스 파리 봉마르셰, 이탈리아 밀라노 엑셀시어, 중국 갤러리라파예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