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3일(현지 시각) 미국 내 불법 이민자 중 200만∼300만명으로 추정되는 범죄자를 즉각 추방하고 미국·멕시코 국경에 '벽이나 울타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선거운동 당시 "불법 이민자 1100만명을 모두 추방하겠다"고 했던 데서 한 발짝 물러섰지만, 300만명 추방도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적잖은 비용 부담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CBS 프로그램 '60분' 인터뷰에서 "우리가 할 일은 200만명, 300만명이 될 수도 있는 범죄자, 전과자, 범죄 조직원, 마약상을 추방하거나 감옥에 보내는 것"이라며 "국경을 안전하게 하고 모든 게 정상화된 다음에 누가 (미국에 잔류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인지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멕시코 국경) 장벽을 정말 건설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렇다. 공화당이 의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울타리(fence)가 될 수도 있고, 장벽이 더 적절한 구간도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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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뉴욕타임스 등은 "트럼프 발언은 기존 강경 태도에선 한 발자국 물러선 것"이라고 평했다. BBC는 "(멕시코 국경에) 크고 아름다운 장벽을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 꽤 단출해졌다. 논란 많았던 공약을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만들기 위해 고심 중"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불법 이민자 문제를 급히 다루는 데 대해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는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던 '불법 이민자 추방군(軍)' 창설에 대해 "의회 차원에서 그럴 계획이 없고, 트럼프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며 "국경 통제가 최우선 과제이고, 이민 문제는 그 이후 논의하면 된다"고 했다.

미국 내에서는 200만~300만명이라는 숫자가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인용한 미국 국토안보국 자료는 범죄 기록이 있는 이민자를 190만명으로 보고 있지만, 여기엔 합법 비자를 가진 이민자들도 포함돼 있다"고 했다. 초당파 싱크탱크인 이민정책연구소도 이 숫자를 82만명으로 보고 있다. 또 이 중 상당수는 유일한 범죄 기록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었다는 것이다. 미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는 "트럼프가 밝힌 숫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두 번의 임기(8년) 동안 추방한 이민자 숫자에 맞먹는다"고 했다. BBC는 "이 숫자를 채우려면 사소한 법 위반자나 합법 이민자들까지 포함돼 논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예산 문제도 난관이다. 불법 이민자 한 명을 추방하는 데 1만달러(약 1170만원)가 들어가 의회의 예산 승인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미 이민세관국(ICE)에 따르면 지난해 추방된 불법 이민자는 23만5000여 명에 불과하다.

미국 내 이민자 사회는 불안에 떨고 있다. 히스패닉 인권단체 '프라미스 애리조나'의 페트라 팰컨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DACA) 프로그램이 중단될까 봐 걱정이 많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실행하고 있는 DACA 혜택을 받는 이민자는 70만여 명에 이른다. 이민 단체들은 트럼프 정부 아래서 연간 영주권 발급도 14만~54만건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편, 트럼프는 이날 CBS '60분' 인터뷰에서 "대통령 연봉으로 1달러만 받겠다"고 했다. 현재 공석인 대법관과 관련해선 "낙태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법관을 지명하겠다"고 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 스캔들을 특별검사를 지명해 수사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입장을 유보했다. 그는 "나는 그들(클린턴 부부)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며 "다음에 다시 만날 때 만족할 만한 명확한 답변을 내놓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트럼프 당선인 측은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인 오바마케어는 즉시 폐지 작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켈리앤 콘웨이 선대본부장은 이날 "트럼프가 내년 1월 대통령 취임 선서 직후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고 새 제도로 대체하기 위한 특별회의를 소집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지난 11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오바마케어 중 2개 조항 정도는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