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대전 유성구 유흥업소 일대에서 남은 양주로 가짜 위스키를 만들어 판 일당이 붙잡혔다. 전북 전주 덕진경찰서는 가짜 양주 제조 일당의 주범 이모(30)씨와 가짜 양주를 판 유흥주점 업주 최모(53)씨를 구속하고 2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경찰은 최씨 업소에서 가짜 양주 160병과 가짜 양주 재료로 쓰고 남은 양주, 가짜 양주를 담을 빈 위스키병 20여개 등을 발견했다.

이들은 전국 유흥주점에서 손님들이 마시고 남은 양주를 사들여 저가의 국산 양주와 혼합했고, 이 혼합액을 빈 위스키병에 담아 병당 15만원에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양주 회사에서 고안해 낸 가짜 양주 방지 장치도 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술에 취한 손님들은 정품 위스키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했다. 경찰은 이들이 4년간 가짜 양주 2만5000병을 팔아 40여억원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30초면 가짜 양주 한 병 뚝딱

지난 2013년 1월 이씨는 대전 유성구 최씨의 유흥주점에 웨이터로 취직했다. 이씨는 일을 시작한 직후 함께 일하던 웨이터들로부터 손님들이 마시다 남은 양주의 재활용 방법을 전수받았다. 몇 주에 걸쳐 손님이 남긴 자투리 양주를 500mL 생수병에 모았다가 생수병이 몇 개 이상 꽉 차면 국산 저가 양주와 섞는 식이다. 자투리 술이 모자라면 다른 주점에서 500mL당 5000원에 사들였다. 국산 저가 양주는 주로 700mL에 5000원 안팎인 '캡틴큐'와 '나폴레옹'을 썼다. 자투리 양주와 국산 양주의 비율은 1대1이었다. 두 술을 2L짜리 페트병에 넣고 흔든 뒤 손님들이 많이 찾는 국산 브랜드 위스키병에 담았다. 저가주 중 '캡틴큐'는 작년 말 생산이 중단됐지만, 이들은 미리 많은 양을 사서 쌓아두고 남은 술과 섞었다.

처음엔 걸림돌이 있었다. 위스키병에는 제조사에서 가짜 양주를 막기 위해 병목에 보호 장치가 돼 있기 때문이다. 병 뚜껑을 따는 순간 원뿔 모양의 추(錘)가 병목 아래로 떨어지면서 입구를 막아버린다. 술을 다시 넣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씨의 손기술은 남달랐다. 이쑤시개로 병목에 틈을 만들어 가짜 양주를 졸졸 부었다. 30초 만에 500mL짜리 12년산 가짜 위스키 1병을 만들 수 있었다. 위스키병과 뚜껑은 수십 번씩 재활용했다.

병뚜껑을 감싸는 비닐도 재활용했다. 손님 상에 내놨을 때 새로 따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비닐을 구기지 않고 보관했다가 그대로 씌웠다. 비닐을 새로 뜯는 것처럼 "쫘르륵" 소리를 내는 손기술도 연습했다.

손님 상에 가짜 양주를 내놓을 때는 눈치가 빨라야 했다. 이들은 양주를 카트에 싣고 손님 방에 들어갔는데, 카트 맨 위에는 진짜 양주를, 아래에는 가짜 양주를 싣고 갔다. 손님이 술에 취해 있으면 아래에서 가짜 양주를 꺼내 돌려 따는 척한 뒤 내려놓았고, 의심하는 손님에게는 진짜 양주를 내놨다. 이미 술에 취해 있는 손님이 대부분이라 손님들은 가짜 양주를 마시면서도 눈치 채지 못했다고 이들은 경찰에서 진술했다. 웨이터를 비롯한 직원들은 손님이 가짜 양주를 권해도 마시지 않았다.

이들은 가짜 양주를 한 병에 15만원씩 팔았다. 자투리 양주 500mL에 5000원, 저가 양주 700mL에 5000원으로, 재료비 1만원이면 500mL 가짜 위스키 두 병을 만들고도 남았으니 원가의 30배 이상을 받고 판 셈이다. 가짜 양주를 한 병 판매하면 최씨가 13만원을 갖고 이씨에게 2만원이 돌아갔다. 10병만 팔아도 이씨는 하루에 20만원을 벌 수 있었다. 같이 일하던 웨이터 박모(26)씨도 동참했다.

이들은 업소가 쉬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하루에 30~40병 정도의 가짜 양주를 만들었다. 가짜 양주는 손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업소 안에 있는 웨이터 휴게실에 따로 보관했다. 그날 만든 술은 그날 모두 판매됐다.

"남은 양주 삽니다" 전국에 명함 돌려

최씨의 유흥주점은 양주 1병과 봉사료를 포함해 한 사람당 27만~30만원인 고급 룸살롱이었다. 유성구 일대에서 장사가 잘되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최씨 업소에선 한 달에 양주 350~600병을 판매했다. 그러다 보니 이씨와 박씨가 부지런히 남은 양주를 모아 가짜 양주를 만들더라도 판매할 양이 항상 모자랐다. 가짜 양주가 모자라 진짜 양주를 손님에게 내놓을 수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 진짜 양주를 팔면 최씨의 수입은 적어지고 웨이터들에게 떨어지는 돈도 없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이씨는 더 적극적으로 가짜 양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전 일대 유흥주점을 돌아다니면서 양주 남은 것을 모아주면 사들이겠다고 홍보했다. 대전 유성구 일대 유흥주점 대부분이 이씨에게 남은 양주를 팔았다. 그러나 여전히 가짜 양주가 부족했던 이씨는 전국에서 자투리 양주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먹다 남은 양주 삽니다"라는 문구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은 명함을 만들었다. 이 명함을 인천·수원·부산·전주 등 전국 각 지역 유흥가를 돌면서 웨이터들을 직접 만나 돌렸다. 남은 양주를 500mL 생수병에 모아주면 한 병에 5000원에 사들이겠다고 했다. 이렇게 만든 이씨의 자투리 양주 공급처는 전국에 총 130여 곳이 됐다.

이씨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유흥업소 웨이터들에게 "얼마나 모았느냐", "남은 양주 연락해달라" 등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경기 동탄이나 인천같이 전주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도 교통비가 나올 만큼 생수병 양주가 모였다고 하면 직접 차를 몰고 자투리 양주를 가지러 갔다. 한 번 거둬들이면 생수병 양주를 최소 100개쯤 실어왔다. 일정량 이상이 되지 않으면 택배로 받기도 했다.

원칙도 만들었다. "콜라나 사이다 병이 아닌 생수병만 사용하라", "술 종류는 상관없지만 물은 타지 마라" "병목까지 꽉 채워서 보내라" 등이었다. 음료수병에 술을 담으면 음료수에 들어 있는 설탕이나 단맛이 섞여 가짜 양주임을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 타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이씨는 각 유흥주점에서 보내온 생수병을 전구 불빛에 비춰보고 색깔 진하기로 물 탔는지 안 탔는지를 구별해 냈다. 한 공급처에서 보내온 생수병 양주 40개 중 30개를 "물 탔다"며 돌려보낸 적도 있었다. 경찰은 "생수병 1개에 최소 3가지의 다른 술이 섞여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료로 쓰고 남은 생수병 양주는 근처 또 다른 유흥주점에 8000~1만원을 받고 팔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방법으로 이씨와 박씨가 가짜 양주를 팔아 번 돈만 한 달에 1000만원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룸살롱 웨이터들은 일정한 월급 없이 팁으로만 생활하는 게 보통인데 이씨는 억대의 외제차를 몰았다. 업주 최씨에게 돌아간 돈도 매달 수천만원에 달한다고 경찰은 밝혔다.

매일 마트에서 양주 20병씩 산 범인

경찰이 수개월간 잠복근무를 했지만, 이들이 가짜 양주를 판매하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다. 맛에서 차이를 느낄 수 없었을 뿐더러 전문가인 웨이터들 손을 거친 터라 색깔도 진짜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경찰들이 직접 손님인 척하고 잠입을 해도 조금만 의심하는 기색을 비추면 웨이터들은 진짜 양주를 갖다줬다.

이들 일당이 덜미를 잡힌 결정적 증거는 대형 할인마트에서 나왔다. 마트 계산대 직원들은 매일 오후 3~5시 사이에 1병 5000원짜리 국산 저가 양주를 20병씩 구매하는 박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마트에 자신의 흔적도 남겼다. 국세청은 대형마트에서 양주를 3L 이상 구매할 때 대량구매로 취급하고 신분증 검사와 함께 주류판매기록부를 작성하게끔 하고 있다. 가정용 주류를 할인 가격에 산 뒤 업소 등에서 판매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장치다. 국산 저가 양주 구매는 박씨 담당이었는데 유성구에 있는 이마트와 홈플러스에서 8만~10만원어치의 국산 저가 양주를 사면서 자신의 신분증을 반복해서 제시했던 것이 꼬리를 잡혔다.

또 다른 증거는 최씨 룸살롱에 주류업체가 납품하던 양주량이 판매량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최씨 룸살롱은 하루에 최소 30팀 80여 명을 받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는데 업소에서 한 달에 사들이는 양주의 양은 120~180병뿐이었다. 하루 5~7병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가짜 양주였다는 뜻이다. 최씨는 경찰에서 자신은 모르는 일이고 웨이터들끼리 한 일이라며 발뺌했으나 결국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전주 덕진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은 지난 7개월간 전국을 다니며 수사한 끝에 이들을 모두 붙잡았다. 경찰은 손님들이 먹고 남긴 양주를 생수병에 담아 이씨에게 팔아넘긴 사람들을 추가 입건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