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권위의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에서 세 번(2013·2015·2016) 우승한 남자의 다리는 얼마나 단단할까. 4일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크리스 프룸(31·영국)에게 용기 내서 물었다. "허벅지 한번 만져봐도 될까요?" 그가 흔쾌히 승낙했다. 겉보기에 마른 체형(185㎝·68㎏)인 프룸의 왼다리를 꾹 눌러봤다. 손가락이 들어가질 않는다. 마치 돌덩이 같았다.
프룸은 현존하는 최고 사이클 선수다. 그는 5일 열리는 '2016 투르 드 프랑스 레탑 코리아' 대회에 초청 선수로 나서기 위해 이날 한국에 왔다. '투르 드 프랑스' 코스를 일부 재현한 아마추어 대회로 1993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가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130㎞ 코스'를 자전거 동호인 2000여명이 함께 달린다. 프룸은 "큰 대회를 통해 자전거 붐이 일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투르 드 프랑스' 2연패를 달성한 프룸은 대회 중 '달리기 사건'으로 화제를 모았다. 12구간 결승선을 600m 남기고 충돌로 자전거가 부서지자 그는 1분 남짓 두 발로 달렸다. 새 자전거를 받아 가까스로 결승선을 통과한 그는 '관중이 몰려 불가피한 사고였다'는 조직위의 판단에 따라 실격되지 않았고, 결국 정상을 차지했다. 프룸은 "당시엔 본능적으로 앞만 보고 뛰었다. 사이클 인생에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이라며 웃었다.
영국인인 프룸은 농장을 경영했던 외가 식구를 따라 아프리카 케냐에서 나고 컸다. 어린 시절 대자연 속에서 자란 그는 특히 자전거 타기를 즐겼다. "다른 이유 없어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게 좋았죠. 제게 사이클은 거창한 스포츠가 아니라 하나의 '생활 방식'(life style)이었죠."
단순한 자전거 타기와 3주 동안 '죽음의 코스'를 달리는 '투르 드 프랑스'는 완전히 다르다. "저도 사람인데 그만두고 싶은 맘이 수도 없이 들죠. 근데 한번 도전하면 꼭 이룬다는 게 제 철칙이에요." 하루 4~5시간씩 전력으로 자전거를 타고나면 피자 두 세판 분량의 음식도 순식간에 먹어 치운단다.
사이클계는 오랫동안 '도핑' 논란에 시달렸다. 7회 연속 '투르 드 프랑스' 정상에 올랐던 랜스 암스트롱은 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면서 모든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프룸은 "암스트롱은 한때 내 영웅이었지만 규칙을 위반하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했다. 그는 "사이클이 도핑에서 100%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근 10년 사이 도핑 테스트가 훨씬 엄격해졌다"며 "실망한 팬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런던올림픽에 이어 지난 리우에서도 동메달(타임 트라이얼)을 목에 걸었던 프룸은 "2020 도쿄올림픽 때도 나는 35세로 한창나이다. 다시 한 번 금메달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사이클이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프룸은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행복이죠. 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다 보면 다섯 살 꼬마가 된 것처럼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