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 대회에서 선수가 말과 함께 도약하고 있다. 한 승마 코치는 “말과 호흡을 잘 맞추려면 다양한 말들을 다뤄봐야 한다”며 “여러 말을 충분히 타 볼 수 있는 재력이 승마에선 곧 실력”이라고 말했다.

최순실씨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 사람들의 이목이 승마로 쏠리고 있다. 최씨의 외동딸인 정유라(20)씨가 고교와 대학을 승마 특기생으로 입학하는 과정에서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 조카 장유진(장시호로 개명)씨도 1990년대까지 승마선수로 활동했다. 정씨는 최고 10억원대의 말을 비롯해 고가(高價)의 말 여러 마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려졌다.

한 아이를 국제적인 승마 선수로 키우려면 적어도 수십억원의 재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 승마계의 중론이다. 말 값만 10억원 이상 들고 연간 레슨비, 말 관리비도 억대로 나가기 때문이다. 최근 누구나 몇만원만 내면 말을 타볼 수 있는 승마장이 전국 곳곳에 생겨나고 있지만, 승마인들은 "엘리트 체육으로서 승마는 취미로서의 승마와 전혀 다른 별개의 세계"라고 말한다. 전국에 800명도 안 되는 선수 층 안에서 인맥을 통해 경기용 말이 거래되고, 때론 모호한 심사 시준으로 판정 시비가 붙기도 한다.

승마계엔 흔히 '마칠기삼(馬七騎三)'이라고 하는 은어가 쓰인다. 경기를 잘 치르는 데 말의 역할이 70%라면 기수의 역할은 30%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말의 기량이 중요한데, 말 값은 금 값처럼 비싸다. 전 승마 국가대표 코치 A씨는 "마장마술의 경우 국내 일반대회용은 수천만~수억원대, 아시안게임급은 10억원대, 올림픽 메달권 말들은 30억원 이상으로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말의 여러 보법(步法)을 평가하는 마장마술 종목의 말은 다른 종목보다 말의 기술 습득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말 값도 제일 비싸다. 구매 시엔 보통 유럽의 승마 클럽 여러 군데에 직접 가서 말을 타본 뒤 결정해야 한다. 경기 화성의 한 승마장 대표 김모(42)씨는 "코치가 자신의 말을 선수에게 (경기용으로) 며칠 동안만 빌려주기도 하는데, 이때도 보통 해당 말 가격의 5%를 대여료로 받는다"고 말했다.

말을 샀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승마장에 있는 마방(馬房)을 빌려 말을 넣고 매일 건초·곡물 사료를 주며 운동을 시켜야 한다. 여기에 드는 관리 비용이 말 한 마리당 한 달에 150만~200만원이다. 6주에 한 번씩 편자도 갈아줘야 한다. 선수가 코치에게 받는 개인 레슨엔 월 100만~150만원 정도 든다. 선수들은 보통 2~3마리의 자기 말을 갖고 있다. 레슨비와 유지비로 연 최소 5000만원이 꼬박꼬박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말 관리사와 수의사를 따로 두면 연간 교육·유지 비용은 억대로 치솟는다. 정유라씨는 현재 승마용 말 4마리와 함께 독일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말을 옮길 땐 흔히 '말차'라 불리는 전용 트럭을 이용하거나 동물 이송용 컨테이너에 담아 항공편으로 옮기는데, 트럭은 한 마리당 150만원 전후, 항공편은 한국에서 유럽까지 1500만원 정도가 든다.

승마의 두 가지 주요 종목인 마장마술과 장애물 중 유력가의 자제들은 주로 마장마술을 택한다고 한다. 2014년 정유라씨와 함께 인천아시안게임에 나가 마장마술 단체전(금)과 개인전(은)에서 메달을 딴 김동선 선수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 1989년 대통령배 대회 등 국내 6개 승마 대회에 출전해 마장마술 부문에서 9번 우승했다. 승마코치 박모(26)씨는 "장애물 종목은 높이가 최고 1.6m나 되는 장애물을 몇 번이고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에 부상 위험이 있다"며 "다칠 위험이 적고 높은 말 가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해서 유독 재벌가 자녀들이 마장마술에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승마인들은 "장애물 넘기에 성공했는지 여부와 소요 시간을 재는 장애물 종목과 달리, 마장마술은 말에 탄 자세나 말과의 교감 등 주관적인 요소가 심사 기준이기 때문에 정실(情實)적인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마장마술을 피겨 스케이팅에, 장애물을 스피드 스케이팅에 비유하기도 한다.

승마 특기생 제도를 이용해 대학에 좀 더 쉽게 진학하는 경우도 많다. 승마를 포함한 체육 특기생 입학 전형에선 보통 수상 실적과 면접 점수만 보고, 수능·내신 성적을 반영하지 않거나 최소한만 보기 때문이다. 재작년 승마 특기생으로 수도권 한 대학에 진학한 김모(21)씨는 "면접의 심사 기준이 모호해 떨어진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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