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송민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 대한 정치권의 진실 공방이 뜨겁다. 쟁점이 되는 사실은 2007년 11월 노무현 정부가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을 기권하는 과정에서 "남북 경로를 통해 북측 의견을 확인하자고 결론 내렸다"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이 했던 역할이다. 문재인 의원은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송민순 전 장관은 분명한 기록을 갖고 회고록을 썼다고 주장한다. 기억은 기록을 이기지 못한다.

송 전 장관은 빙하처럼 얼어붙은 한반도 냉전을 해소하는 길을 모색할 목적으로 회고록을 썼다고 한다. 얼어붙은 빙하도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건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모든 것은 역사가 있기에, 빙하의 역사를 쓸 수 있다. 빙하의 역사란 한반도 냉전의 역사다. 역사란 기록을 근거로 과거의 사실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문제는 역사적 사실은 과거의 사실에 근거하지만 그것으로 환원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의 사실은 신도 못 바꾸는 이미 죽은 것이지만, 빙하처럼 움직이는 역사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 재구성되는 역사적 사실에는 '과거의 사실'에는 없는 틈새가 있다. 그 틈새 때문에 역사는 빙하처럼 움직인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 파문의 중심이 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오른쪽)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문 전 대표가 17일 인천시 남동구 이익공유 시행기업 '디와이'를 방문, 건물에 들어서고 있다. 송 전 장관이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 대학교로 출근하던 중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답변하고 있다.

["재차 확인해보라"며 다시 文 치받은 송민순]

2007년 남북 관계와 2016년 대북 관계는 다르다. 그 차이가 냉전의 역사를 쓰게 한다. 두 시기 사이 남북 관계의 차이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설명 방식은 보수와 진보의 인과관계 구성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차이를 넘어 인과관계를 구성하는 요인으로서 송 전 장관의 기록은 문 의원의 기억보다 신빙성을 갖는 건 명확하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미래를 움직이는 건 바람'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 핵실험으로 꽁꽁 얼어붙은 남북 관계의 빙하를 녹일 수 있는 바람으로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하나로 묶는 제안을 했다. 회고록에서 정말로 논쟁을 벌여야 하는 게 이 제안이고 과거의 사실 그 자체가 아닌데, 문 의원은 어설프게 대응하다가 함정에 빠졌다. 미국도 이미 차기 정부를 위해 빙하를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를 찾는 시도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문 의원은 2007년엔 햇볕으로 빙하를 녹일 수 있다는 오판을 했다는 걸 고백하고, 실패를 교훈 삼아 빙하를 움직일 바람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말해야 대선 후보로서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