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 등을 미리 받아보고 수정한 흔적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후 4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최순실씨는 선거 때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 받은 적 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 물은 적은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 개인적인 의견 청취라는 얘기다. 이날 오전 이정현 대표가 이 사건에 대해 언급했을 때 나온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퀄리티 떨어지게 최순실이 웬말이냐?
"대체 최순실이 뭐라고 대통령 연설문을 먼저 보고 첨삭을 했나"하는 의문을 많은 독자가 제기한다. '비선 논란'의 주인공답게 대중이 기억하는 최순실 씨의 모습은 아래 사진처럼 '적당히 여유있는 체격에 선글라스 끼고 아이 연습장에 나타나는 부유한 사모님'(사진1)처럼 보인다. 딸의 스승에게 "교수같지도 않은 게"라고 말했다는 소식이 '몰상식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사진1>스마트 폰을 들고 있는 최순실씨.

사실 최순실씨는 ‘배울만큼 배운 여자’다. 언론에 노출된 최씨의 학력은 1975년 단국대 영문과를 졸업, 이어 같은 대학원 영문학과 수료. 1986년에는 육영 재단 부설 유치원 원장을 했고, 90년대에는 강남구 신사동에 ‘초이유치원’을 열었다. 이 학원은 ‘몬테소리 학습’을 하는 것으로 이목을 끌었다.

몬테소리는 ‘교사의 관찰, 상벌, 훈계 대신 놀이작업을 중시하는 감각훈련을 위한 몬테소리교구를 활용하는 방법’이라는데, 당시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는 쉽게 ‘유럽에서 온 영재 교육법’으로 통했다. 이 학원은 서울에 ‘초고가 유치원 바람’의 상징으로 분류됐는데, 이를 초기에 도입한 사람이 최순실씨였다. ‘치맛바람에 영합하는 장사꾼’은 아니었던 것이다.

두 편의 관련 논문(사진2)에서 그의 이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이 유치원에 자녀를 보냈다는 한 어머니는 "당시는 지금처럼 살이 찌지도 않았고, 유치원 수준이 꽤 괜찮았다"고 말했다. "말이 거칠기는 해도, 아는 것 많고 똑부러지는 편"이라는 증언도 나왔다. 그러니 '첨삭지도'를 하기에 '퀄리티' 떨어지는 인물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문제가 있다. 첨삭지도 대상이 대통령의 통치이념을 담는 '대통령 연설문'이었다는 것. 이 '작고 사소하고 깨알같은' 문제 때문에 지금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사진2>최순실씨가 쓴 논문 및 특허를 갖고 있는 몬테소리 인터넷 교육법.


핵심은 누가 썼느냐가 아닌 '누가 보냈냐'
25일 4시 대통령은 '누가 연락을 주고 받았는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전날 JTBC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씨 PC에 담긴 문건의 작성 시점은 2012년 12월부터 2014년 3월이다. 18대 대통령 선거(2012년 12월19일) 나흘 전인 2012년 12월 15일 오후 3시 박근혜 당시 후보의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유세부터, 2014년 독일 드레스덴 방문 연설문까지 다양한 자료가 들어있다.
최순실에게 이메일을 통해 '휘리릭' 문서를 날린 사람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과연 누구일까.

▲ 두 조건을 공통으로 만족시키는 사람 ▲이 인사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 ▲대통령 자신 세 그룹이다.

언론은 가장 먼저, 지난 10년간 대통령의 ‘펜’ 노릇을 해온 조인근(사진) 전 연설기록비서관을 떠올렸다. JTBC 보도 중 “청와대 인사가 작성한 문건”이라는 표현이 조씨를 뜻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상한 건, 지난 7월 청와대를 퇴직하고 지난 9월 새 직장(한국증권금융 상근감사위원)을 얻은 그가 어제 오후 회사를 나간 뒤 오늘은 갑자기 결근까지하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7월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한 조인근 연설기록비서관.

그가 연초 사석에서 했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작성해 올린) 연설문이 자꾸 이상하게 돼서 돌아온다.” 그가 쓴 연설문 초안은 당시 청와대 1·2부속비서관인 정호성 비서관과 안봉근 비서관(현 국정홍보비서관)을 통해 올라가는데, 최종 연설문이 뭔가 달라졌다는 얘기다. 조씨가 최순실에게 ‘첨삭지도’를 맡겨놓고, 뒤에서 이런 식으로 궁시렁거렸을 확률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정호성, 안봉근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 했을 가능성은? 대통령은 2014년 말, 이른바 ‘십상시 파동’이 일어났을 때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이들을 표현했다.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윗분의 뒤통수를 치는 일도 가능한 게 인간지사. 그들이 과연 ‘최순실 첨삭지도’를 위해 이메일을 주고 받았을까.

대통령 비서실장도 이런 서류 중 일부를 볼 수 있는 자리다. 그러나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주 “최순실이 가장 잘하는 일이 대통령 연설문 고치는 일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숨바꼭질의 마지막 답은 어디있나.

201212~201403 그것이 전부?
청와대 최순실 소유의 태블릿 PC에 저장된 문서는 2012년 12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약 1년 3개월치다. 이 기간에만 대통령 관련 서류가 넘어간 것은 왜일까.

IT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휴대전화 교체주기는 평균 1~2년, 태블릿 PC는 그보다 조금 더 긴 2년~3년"이라고 말한다. 혹 '1년 3개월'은 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 등을 열람한 기간이 아니라 최순실씨가 '이 태블릿PC를 사용한 기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재력있는 최씨는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태블릿을 새로 구입하고?
태블릿 PC는 공책보다 작은 크기에 무게도 500그램 안팎이다. 급히 여행을 떠난 최씨가 이 태블릿PC를 두고 간 것은 '헌 거 말고 새 태블릿'이 따로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도움 받는 것을) 그만뒀다"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더 많은 궁금증을 낳는다.
2014년에도 청와대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았다는 뜻일까. 대통령 비서실장, 수석, 비서관들은 무엇을 했기에 취임 후 2년이 지난 2014년말까지 최순실 손에 대통령 관련 문서가 들어갔을까.
독일에서 행방이 묘연한 최순실씨 수중엔 '태블릿 PC'가 있을까, 없을까.
혹 있다면 거기엔 어떤 문서가 들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