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사랑한 국시집

칼국수가 대중화된 건 1969년 박정희 정부가 분식장려운동을 하면서다. 그해 고(故)이옥만씨는 성북동에 '국시집'을 열었다. 경북 안동이 뿌리다. 사골 국물에 '절면법'을 이용해 반죽한 밀가루를 칼로 가늘게 썰어냈다.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하기 전부터 국시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칼국수 정치'라고 불릴 만큼 칼국수 좋아하는 대통령 덕에 문전성시를 이뤘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당시 정치인이라면 으레 칼국수를 먹어야 했다"며 "특히 경상도 출신 정치인들이 국시집에 환호했다"고 말했다. 현재 국시집은 이옥만 할머니의 딸 이수자(65)씨가 운영한다.

국시집이 인기를 끌면서 여기저기 칼국숫집이 생겨났다. 국시집 주방에서 20년간 일한 박일남(71)씨는 1997년 돈암동에 '밀양손칼국수'를 열었다. 혜화동 '혜화칼국수', 성북동 '손칼국수'도 계보가 같다. 양재동 '소호정' 역시 경상도식 칼국수를 선보인다.

명동교자도 서울 대표 칼국숫집이다. 닭고기 육수에 면을 넣고 끓이는 충청도식 칼국수다. 고명으로 피가 얇은 만두와 다진 고기가 얹어져 씹는 맛을 더한다. 국시집보다 3년 먼저 생겼다. 곰탕집 '하동관'이 있던 수하동 골목에서 '장수장'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창업주 박연하씨는 명동으로 진출하면서 '명동칼국수'로 상호를 변경했다. 이후 유사 간판을 내건 칼국숫집이 늘어나면서 1978년 지금의 이름으로 간판을 새로 달았다. 현재는 둘째 아들 박휘준(49) 부부가 대를 이어 맛을 책임진다. 명동교자에서 38년 일했던 신철호 지배인은 서초역 인근에 '강남교자'를 개업했다.

강남에 진출한 봉산집

삼각지 차돌박이집으로 유명한 봉산집은 황해도 봉산 출신 이갑순(82), 양희성(91)씨 부부가 1958년 개업했다. 이들은 지금도 직접 장을 보고, 양념간장을 만든다. 셋째 딸 양서영(50)씨, 막내딸 양인영(48)씨가 일손을 돕는다. 장손녀 현은(33)씨 부부와 손자 현우(28)씨도 합세해 3대가 꾸려간다.

봉산집은 풋고추와 파로 무장한 양념간장에 찍어 먹는 차돌구이가 일품이다. 차돌막장찌개도 유명하다. 이갑순 할머니가 특급 비법으로 담근 막장으로 만든다. 아들 재혁(58)씨는 삼성동 뒷골목에 분점을 냈다가 2012년 봉은사사거리 대로변으로 옮겨 3층 규모의 건물을 세웠다. 봉산집 도산대로점도 있다. 직영분점은 아니고, 재혁씨 처남이 운영한다.

되비지에서 약콩두부까지

대치동 콩 전문 음식점 피양콩할마니 계보도 재미있다. 평안도 사투리인 피양콩 할마니는 강산애(88) 할머니가 서울에 정착하며 꾸린 곳이다. 40년 넘게 둘째 딸 이현아(55)씨와 운영한다. 콩을 물에 불려 맷돌에 되직하게 갈아 콩물을 빼내지 않은 '되비지', 즉 콩비지 요리를 선보인다. 역삼동에 있는 분점은 강 할머니 둘째 며느리 김종분(58)씨가 운영한다. '콩박사'로도 유명한 이기원(42) 서울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가 강 할머니 손자다. 콩 계보를 잇는 이 교수는 '약콩두유'를 개발한 주역으로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준 콩비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마복림 할머니 막내아들 박용석 부부가 운영하는 ‘마복림 할머니 막내아들네’ 외관.

"이젠 며느리도 알아요!"

"고추장 비밀은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 1990년대 중반 한 고추장 TV 광고 속 대사다. 1953년 신당동에 떡볶이 가판대를 연 이후 58년간 떡볶이 골목을 지킨 고(故)마복림 할머니는 이 대사로 유명인사가 됐다. 당시 마 할머니는 중국집에 갔다가 가래떡을 실수로 짜장면에 떨어뜨리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졌으나 확인되지는 않는다. 5년 전 91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할머니 다섯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이 가업을 잇고 있다.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는 첫째, 둘째, 셋째 아들 내외가 협업해 꾸려나간다. 이곳 간판에는 "이젠 며느리도 알아요!"라며 할머니의 마법의 소스로 가업을 잇고 있음을 강조한다. 마 할머니 막내 아들 박용석(57)씨 부부는 1993년 독립해 본점에서 10m가량 떨어진 곳에서 마복림 할머니 막내아들네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