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북구 번동 오패산터널 인근에서 경찰이 사제(私製) 총기에 맞아 숨진 사건을 계기로 '한국이 더 이상 총기청정국이 아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경찰 살해범 성병대(46)가 인터넷 동영상으로 총기 제작법을 배운 사실이 알려지며, 비전문가도 쉽게 총을 만들어 살상 무기로 쓸 수 있다는 공포가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실제 본지가 인터넷 동영상으로 총기 제작법을 시청하고 시중에서 재료를 구해 조립한 뒤 발사 실험까지 마치는 데 불과 4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본지 취재팀은 20일 오후 서울 청계천 공구상가 일대를 찾아 범인 성이 쓴 사제 총을 직접 만들어봤다.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는 총기 제작에 참고할 수 있는 영상이 널려 있었다. 한국어로 검색되는 영상은 거의 없었지만 'making gun' 'homemade gun'처럼 영어를 입력하니 3000만건 이상의 영상이 검색됐다. 성도 인터넷 동영상에서 배운 방법으로 총기를 제작했다고 한다.
성은 가는 쇠파이프를 잘라 만든 총신(銃身) 여러 개를 나무 받침대에 붙이는 방법으로 총기를 만들었다. 탄환은 지름 1㎝가 채 안 되는 작은 쇠구슬이었다. 미리 화약을 채워 둔 쇠파이프에 쇠구슬을 넣고 불을 붙여 발사하는 원시적인 화승총 방식이었지만, 이 총은 경찰관의 어깻죽지를 관통해 폐에 박힐 정도로 위력이 셌다. 화약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불꽃놀이용 폭죽을 썼다고 한다. 20일 성의 집을 압수 수색한 경찰은 "화약을 추출하고 남은 것으로 보이는 폭죽 껍데기가 다량 발견됐다"고 밝혔다.
성이 총기를 만드는 데 사용한 재료들은 청계천 공구상가나 시중 문구점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완성된 사제 총을 구입하는 것은 어려웠다. 공구상 상인들은 "청계천만 가면 대포도 구할 수 있다는 건 옛날 얘기"라며 "이제 총이 아니라 칼도 못 만들어 준다"고 입을 모았다. 범죄에 사용된 총기의 출처로 청계천이 지목된 이후 상인들이 자정(自淨) 노력을 펼쳤고 단속도 강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기 조립에 필요한 재료를 사거나 가공하는 것은 가능했다. 목재(木材)를 사서 권총 손잡이 모양으로 가공하는 데 1만원이 들었고, 가는 쇠파이프를 사서 총신을 만드는 데 약 3만원이 들었다. 탄환 대신 쓸 쇠구슬 80여개를 사는 데는 2000원이 들었다. 화약은 시중 문방구에서 구입한 불꽃놀이용 폭죽에서 빼서 썼다. 조립 과정은 유튜브 동영상을 참조했다. 총기 제작법 시청부터 재료 구입과 조립, 발사 실험까지 모든 과정을 마치는 데 4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성이 범행에 사용한 총기보다 작은 '5만원'짜리 어설픈 총이었지만 심지에 불을 붙이자 몇 초 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쇠구슬이 날아가 2m 앞에 있는 두꺼운 종이를 뚫었다. 한 화약류 전문가는 "놀이용 폭죽에 들어 있는 화약도 일정량 이상이 모이면 상당한 폭발력을 낼 수 있다"며 "조금만 더 공들여 만들면 사제 총으로 사람을 살상할 수 있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총기 제작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경찰은 지난 1월부터 총포·화약류의 제조 방법이나 설계도를 인터넷에 올린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유튜브처럼 서버가 외국에 있는 사이트의 경우 제한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인터넷에는 불법 총기 제작·개조 영상이 널려 있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14년부터 지난 6일까지 제재한 무기류 불법 제조·판매 관련 정보는 모두 537건에 불과했다.
완구용 총기의 위력을 강화한 '개조 총기' 역시 법의 사각지대로 꼽힌다. 지난 2013년 4월 대구에서 석모(39)씨가 완구용 권총을 개조한 사제 총기를 난사해 여대생 1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원래 플라스틱 총알이 나가게 돼 있는 총기였지만 석씨는 납탄두를 발사할 수 있도록 총을 불법 개조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허가 없이 총을 개조하는 것도 불법이지만 인터넷에는 장난감 총을 분해·개조해 위력을 강화하는 방법이 공유되고 있다. 성 역시 인터넷을 통해 다수의 성인용 장난감 총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이나 밀수입 등을 통해 불법으로 유통되는 불법 총기 역시 매년 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로 밀반입하다 적발된 총기류는 지난 2012년 141정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지난 8월까지 246정이나 됐다. 요즘엔 국제 우편 등을 통해 부품을 따로 들여오고 국내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암암리에 총기가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이 '총기 위험 지대'가 됐다는 지적에 대해 일선 경찰은 '지나친 걱정'이라는 입장이다. 서울 한 경찰서의 생활안전과장은 "최근 일어난 몇 건의 사고들로 '총기 관리 실태' 에 허점이 있다고 단정 짓는 건 무리다"며 "한국의 총기 사고는 외국에 비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난해 경찰이 엽총으로 살해된 데 이어 사제 총기 피격 사건까지 발생했기 때문에 시민들이 '나도 총기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