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라오스 간 국경으로 향하는 차 안에 북한 출신 여성 4명과 18개월 된 아이 지연이가 타고 있다. 이들은 이날 밤 국경을 넘을 것이다. 함께 차에 탄 탈북자 출신 브로커 장광옥씨가 기도한다. "이 순간 이후로 이들이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너무 힘들지 않게, 괴롭지 않게 도와주세요."

새까만 밤, 엄마 서옥주씨는 지연이에게 수면제를 먹인다. 아이가 울면 국경지대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발각된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중국 남성에게 팔려간 서씨는 아이를 데리고 도망쳐 나와 탈북길에 올랐다. 하지만 거친 산길을 걷는 엄마 등에 업힌 아기는 국경을 채 넘기도 전에 깨어나고 만다. 깊고 위험한 산속, 아이를 품에 안고 엄마가 숨죽여 운다. "엄마가 너무 미안해."

깊은 밤 18개월 된 아기가 서옥주씨 등에 업혀 중국-라오스 간 국경을 넘는 장면. 북한 출신으로 중국 남성에게 팔려간 서씨는 아이를 데리고 도망쳤다.

2008년 시작된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시리즈는 탈북자들의 참담한 현실과 목숨 건 탈북 과정을 적나라하게 담아내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한밤에 몰래 국경을 넘는 일가족, 성경책과 돈이 오가는 북한-중국 국경지대, 인신매매 당한 탈북 여성의 아이가 우여곡절 끝에 스위스로 입양되는 과정 등을 다뤘다. 1편은 모나코 몬테카를로 TV 페스티벌 최우수상을 비롯해 16개 언론상을 받았고 1~3편 모두 에미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밀입국과 밀항을 거듭하며, 때론 중국 공안에 붙잡히면서도 위험천만한 현장을 취재한 노력에 찬사가 쏟아졌다.

3편 방영 이후 3년 만에 네 번째 이야기가 찾아온다. 18일 밤 9시 50분 TV조선 개국 5주년 특별기획으로 70분간 방송되는 '천국의 국경을 넘다 2016-브로커'다. 1~3편과 달리 이번엔 돈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지금부터 걸음걸음이 다 돈이야." "10년 전 두만강 넘길 때 100만원도 안 줬어. 요즘은 최소 1000만원이에요." 여전히 탈북 실태를 다루지만 시점이 다르다. 구조되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하는 사람 중심이다. 어렵게 섭외에 응한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와 탈북자 장광옥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갈렙선교회 김성은(왼쪽) 목사와 탈북자 장광옥씨.

탈북 인권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김 목사는 '꽃제비'라 불리는 북한 고아들을 데려다 한국이나 미국에 입양 보내는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탈북 브로커로 이름난 장씨와 손을 잡는다. 10년 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장씨는 아파트 공사장에서 막노동하며 두 아이를 홀로 키운다. 먹고살기 위해 브로커 일을 겸해 오던 그는 인권운동가로 거듭나 명성을 얻겠다는 목적으로 김 목사 일을 돕는다. 다큐는 선과 악의 중간지대에 선 브로커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민과 욕망, 갈등을 깊이 다룬다.

중국·북한 현지 브로커들과의 통화는 도청 우려로 1분을 넘기지 못한다. 고아 탈북 계획이 북한 당국에 발각되면서 장씨가 돈으로 매수했던 북한 군인과 일가족이 처형당하는 일도 벌어진다. 장씨가 "나를 재촉하지만 않았어도 괜한 사람들이 죽지 않았다"고 소리치며 김 목사와 갈등을 빚는 장면, 목숨 건 탈북을 성공시킨 뒤 김 목사가 "하… 좀 허탈해"라고 심경을 고백하는 장면 등이 가감 없이 담겼다.

10년간 탈북자 문제에 매달려온 이학준 PD가 이번에도 연출을 맡았다. 그는 "이런 시스템을 통해 사람 목숨을 구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려 했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중국-라오스 간 국경을 넘는 현장은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공동 취재했다.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온 영화배우 안성기가 내레이션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