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뉴욕으로 이주한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밖에 없는 딸 양호가 조금 더 자유롭게 공부하기 위해서다. 여유로운 시간과 다문화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아파트를 구하자마자 학교를 결정했다. 물론 공립학교다. 미국 초등학교에서는 여러 층의 학생들이나 다인종과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도 4학년 때 'P.S.125'라는 뉴욕 할렘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다. 놀림도 많이 당했지만 흑인 문화와 흑인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다. 특히 흑인 언어를 같이 공유했다는 것은 큰 수확이다. 노래를 만들 때 흑인 영어를 많이 쓴다. 예를 들어 "Hey man" "What's up homeboy" "Home skillet" 같은 낱말들은 흑인 특유의 은어다. 나의 제기랄 로큰롤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

양호 학교 앞에 선 한옥사나 1일 경찰.

학교에 등록하러 갔는데 놀랍게도 간단명료했다. 과거 학교 성적표, 예방주사 접종카드, 출생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끝났다. 바로 담임선생님과 면담했다. 내가 "양호가 영어는 잘하지만 읽고 쓰기를 못해요" 하니까 선생님 왈, "걱정 마세요. 그러니까 학교를 다니는 거예요. 내가 가르쳐 줄게요" 했다.

이 초등학교의 첫 번째 놀라운 점은 백인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맨해튼에서 지하철로 15분 거리인데 중국, 남미, 인도 학생이 가장 많다. 티베트와 방글라데시 학생도 있다. 뉴욕을 떠나 있었던 12년간 인구 구조가 많이 달라졌다. 뉴욕의 '중국 파워'는 항상 막강했지만 최근에는 '인도 파워'가 세력을 보인다. 우리 동네 중심가는 완전히 인도 거리다. 나는 '뉴 뉴델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뉴욕에 인도인이 늘어난 이유는 이민자도 늘었지만 남미인들 못지않게 아이를 많이 낳기 때문이다. 적어도 서너 명씩 낳는다. 평균적으로 머리가 좋아서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

이에 맞춰 백인 인구가 줄어든다. 특히 뉴욕, 시카고, LA 같은 대도시에서는 백인 찾기가 어렵다. 말 그대로 백인들이 사라지고 있다. 맨해튼이나 롱아일랜드, 뉴저지로 가야 백인들이 보인다. 뉴욕 한인들 역시 백인들이 사는 뉴저지와 롱아일랜드에 많이 산다. 1964년 시작된 페미니즘 운동 때문에 백인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 자기 커리어를 중시하고 세계 여행을 다니며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한다. 아이를 낳아도 한둘에 그친다. 반대로 무슬림 인구가 급속히 늘어난다.

며칠 전 프랑스 파리에서 온 도자기 공예가와 이야기를 했는데 그가 말했다. "파리는 완전히 무슬림 도시가 됐어. 생각해 봐. 마누라가 네 명씩 있으니 하나씩만 낳아도 아이가 넷이나 되잖아." 무슬림은 종교법에 따라 아내를 7명까지 가질 수 있다. 뉴욕을 간단히 정리하면 백인이 많이 사는 동네가 좋은 동네이고, 백인 학생이 많은 학교가 좋은 학교이고, 백인 직원이 많은 회사가 좋은 직장이다.

양호네 학교는 오전 8시 10분이면 모든 문을 잠근다. 아무도 출입할 수 없고 정문은 여자 경찰이 완전 무장해서 지킨다. 수시로 일어나는 총기 사건을 막기 위해서다. 나의 사랑스러운 신촌 창서초등학교와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다행히 양호가 학교에 잘 적응을 하고 있고 친구들도 생겼다. 고마운 일이다. 여러분,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가을이 너무나 짧으니까, 마음껏 푸르고 깊은 하늘을 즐기십시오. 사랑과 평화를 담아, 한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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