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들은 제 안에 들어왔다가 영화가 끝나면 떠나요. '도쿄 타워'(2004)의 '시후미'도, '실락원'(1997)의 '린코'도…."

일본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첫손 꼽히는 구로키 히토미(黑木瞳·56·사진)가 자신의 첫 연출작 '얄미운 여자'를 들고 감독 자격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왔다. 구로키 감독은 7일 기자 간담회에서 "새 배역을 맡을 때 이전 여자를 떠나보내지 않으면 새로운 여자가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다. "깔끔하게 캐릭터와 '사요나라'한다"고 말했지만, 아직 많은 한국 관객은 그녀를 잊지 못한다.

사랑 없는 결혼을 뒤로한 채 유부남 애인과 마지막 여행을 떠나던 '실락원'의 린코. 그리고 스무 살 연하남과 금지된 사랑에 빠진 '도쿄 타워'의 시후미. 특히 '실락원'은 일본에서 '실락원 증후군'으로 불리는 연인 동반 자살이 사회문제가 될 만큼 충격이 컸고 불륜을 다루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도 영향을 끼쳤다. 어찌 보면 배우 구로키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불륜의 아이콘'이었다.

영화 '얄미운 여자'는 사촌 사이지만 상반된 성격으로 티격태격하는 두 여주인공의 성장담. 웃음과 감동이 적절히 안배된 전형적인 일본 드라마다. 구로키 감독은 같은 소설이 원작인 동명의 NHK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그녀는 "이 영화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슬픔을 딛고 다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다. 또 요즘 영화·드라마에서 주역을 맡기 어려운 40대 여배우들이 주연인 것도 의미가 크다"고 했다.

"부산영화제엔 처음 왔지만 실은 서울에 자주 놀러 간다"고도 했다. "한국인의 뜨거운 영화 사랑도 잘 알지요. 제 영화도 많은 한국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