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하다고 해도, 불편하다고 해도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대상은 있습니다. 그 '불쾌'를 어떻게 '쾌'로 연계하는가, 그런 고민들이 영화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일 겁니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초청작 '분노'의 이상일(42) 감독은 7일 오후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 자신의 작품을 이같이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 일본이 놓인 상황,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팽배한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이 감독은 재일 한국인 3세다. 그는 1999년 일본영화대학 졸업 작품 '청'으로 큰 주목을 받으며 영화감독 데뷔했고, 2006년에는 '훌라 걸스'로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치열한 작업 방식으로 유명한 그가 이번에 진단한 일본의 문제는 '불신'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만들어내는 무기력, 그리고 그 무기력은 다시 분노로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하다가 어느 순간 폭발한다.

이 감독은 "마음 속 진심은 세상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그것을 전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어 "그 마음을 표현한다고 해도 그걸 느끼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영화는 어느 살인 사건의 현장을 보여주며 강렬하게 시작한다. 스릴러처럼 시작한 영화는 금세 이 사건과는 관계 없는 세 부류의 일상을 그려나간다.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던 딸을 찾은 아버지,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는 동성애자 남성, 이제 막 청춘을 꽃피우는 소년과 소녀.

이 감독은 '분노'라는 제목에 대해 "표현하기 쉽지 않은 분노, 내성적인 분노로 봐달라"고 했다. 그는 "그 분노는 타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고, 전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 속에 있는 분노다. 이건 일본 사회,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는 그런 감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관객이 이들의 일상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건 이들의 삶에 각각 새로운 인물들이 파고들면서부터다. 극중 인물들은 영화 후반부가 돼야 알게 되지만, 관객은 언론에서 밝힌 살인사건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일상에 침투한 세 사람과 묘하게 닮았다는 걸 안다. 별 탈 없어 보이던 이들이 외부인들을 의심하자 삶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감독은 이와 관련 "살인범이 누구인지를 쫓아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건 사람에 대한 의심과 믿음"이라고 짚었다. 그는 "사람을 의심하면 잃어버리는 게 있다. 반대로 쉽게 믿으면 위태로워진다. 어쨌든 이 두 가지는 행복이나 불행을 안겨준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믿는다는 걸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이 감독의 전작 '악인' 또한 요시다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해 만들어졌다. 이 감독은 요시다 작가의 소설을 두 차례나 영화화한 것과 관련, "소설이나 영화는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작업인데, 요시다 작가의 작품에는 그 허구 속에 거짓말이 없다는 게 매력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내가 싫어진다. 내 안에 숨기고 싶은 것이 자꾸 그의 글에 드러난다. 나의 이기적인 부분, 타자와 구별짓는 모습을 보게 하는 게 요시다 작가 작품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