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으로 다시 돌아온 지 이제 한 달이 넘었구나. 정말 정신없다. 아파트에 전기 연결하는 데 1주일, 가스 연결 1주일, 케이블 TV 1주일, 모든 것이 1주 아니면 3주씩 걸린다. 한국에선 하루 만에 해결되는 일들에 이렇게 시간이 걸리니 답답하다. 도대체 미국에 서비스산업이 있는 건가.
컨테이너로 도착한 이삿짐 50상자를 하나씩 푸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우리 마누라가 워낙 꼼꼼해서 숟가락 젓가락, 옷까지 모두 챙겨왔다. 모스크바 공산주의 체제에서 20년을 살았으니, 물건을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베이비, 이 컨테이너 하나 부치는 값이 8000달러인데, 우리 그냥 빨가벗고 가자. 거기 가서 옷도 새로 사고 가구도 새로 사서 집을 꾸미자" 하니, "안 돼, 우리 물건 다 가져갈 거야!" 했다. 뜯고 뜯고 뜯고, 풀고 풀고 또 풀고, 아휴, 지친다. "물 좀 주소!" 고함이 저절로 나온다.
그 와중에 오래된 친구가 좀 쉬라며 세계무역센터(WTC) 꼭대기를 관람하는 표 석 장을 준다. 그래, 그럼 하루 쉬고 즐기자! 표값도 장난 아니다. 34달러. 빌딩 올라가는 데 4만원이라니? 한씨 삼총사는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WTC 엘리베이터를 탔다. 100층까지 올라가는 데 딱 1분 걸린다. 시속 36.5㎞이다. 대만 타이베이 타워의 시속 60㎞ 엘리베이터 다음으로 빠르다. WTC에는 사람들도 살고 사무실도 많아 엘리베이터가 무려 71개나 된다.
100층에 내리자마자 다큐멘터리를 5분간 보여준다. 브로드웨이 감독이 제작한 것처럼 뉴욕 동네 하나하나를 설명하고 전통을 알려준다. 이어 100층 전망대에서 맨해튼을 감상하니 "뉴욕에 왔구나!"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양호는 "야! 신기하다" 하고 감탄한다. 신이 나서 막 뛰어다닌다. 뉴욕이란 도시의 예술성은 어느 다른 도시도 따라올 수 없다. 한마디로 장대하다. 전망대 전체가 유리로 둘러싸여 있어 사진 찍기에는 조금 불편하다. 이곳에 전 세계 관광객이 하루 20만명이나 올라온다. 그 입장료가 엄청나다. 생각해보라. 매일 34달러×20만!
즐겁게 구경하고 지하철로 발을 옮기는데, 지하로 연결되는 로비가 대단히 거창하다. 수천 개의 하얀 기둥이 흰 대리석 바닥 위에 솟아있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이것은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야심작이다. 올림픽 주경기장의 두 배나 되는 기차역을 건설하는 데 12년이나 결렸고, 40억달러가 들어간 프로젝트다. 세계 여러 군데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아방가르드한 건축물은 처음 본다. 뉴욕에 또 하나의 관광 명물이 생긴 것이다. 꼭대기 난간에서 아래 대리석 위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 같다. 꿈속의 광경을 보는 듯하다. 나는 아직도 뉴욕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오니 양호가 "파파, 배고파!" 한다. "그래, 뭘 해줄까?" 하니 "스팸하고 김하고 밥하고 김치찌개" 한다. "오케이, 맛있게 먹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기억난다. "Life is like riding a bicycle. To keep your balance, you must keep moving(인생은 자전거 타기다. 균형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