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치약 제품 속에도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화학물질이 들어갔다"는 소식에 '케미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문제가 된 성분은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와 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라는 화학물질로, 일부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도 들어간 것이 확인돼 유해성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이 물질을 코로 들이마시면 "폐 손상 우려가 있다"는데 양치질한 뒤 물로 다 헹궈내지 못한 치약 잔류물을 삼켰을 때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CMIT/MIT'의 정체는
CMIT/MIT라는 물질은 가습기 살균제에도 쓰였고 샴푸·린스 등과 같은 씻어내는 화장품류와 가글액과 같은 의약외품까지 광범위한 제품에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치약에는 넣으면 안 되는 미허가 물질인데 아모레퍼시픽이 만든 치약 제품 11종에 CMIT/MIT가 쓰인 게 확인돼 회수 조처가 내려졌다. 미국·유럽에선 치약 만들 때 쓰는 물질이다. 이 물질은 화장품을 오래 두고 쓰면 생기는 곰팡이를 억제하는 '보존제' 용도로도 쓰이고, 가습기 살균제처럼 '살균' 용도로도 쓰인다. "보존제로 쓰일 땐 해당 제품 속 미생물 번식만 막으면 되니까 살균제로 쓰일 때보다 CMIT/MIT 함량이 훨씬 적게 들어간다"(업계 관계자)는 설명이다.
가습기 살균제에는 살균제 성분으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나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를 쓴 제품이 있었고, CMIT/MIT를 쓴 제품도 있었다. 2011년 11월 질병관리본부는 동물실험에서 PHMG와 PGH를 쓴 제품에선 '폐 손상이 확인됐다'고 했지만, CMIT/MIT를 쓴 제품에선 '유의미한 폐 손상이 확인 안 됐다'고 결론 냈다. 그러나 CMIT/MIT가 든 가습기 살균제를 쓴 경우에도 폐 질환을 앓는 경우가 잇따라 나왔고, 환경부는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유해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흡입하는 것과 삼키는 건 달라"
코로 들이마시면 위험할 수 있는 물질이니 삼켜도 위험한 게 아닐까. 일부 전문가는 "소화기를 통해 들어가더라도 체내에 흡수된 뒤 전신 순환 과정을 거쳐 폐 손상에 이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고 말했다. 그러나 "흡입하는 것과 삼키는 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전신에 영향을 끼치는 독성 물질이 아니라면 흡입 독성 물질을 삼켰을 때 똑같은 폐해가 일어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는 전문가(홍윤철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등)가 많았다. 이에 일정 기준치 이하로는 광범위한 화학제품에서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피부에 닿는 화장품류의 경우에도 나중에 물로 씻어내는 샴푸·린스, 염색제 등과 같은 물질에선 CMIT/MIT를 기준치(15PPM) 아래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60㎏ 성인, 치약 1432톤 먹어야 치사량
[[기업 정보] 아모레퍼시픽 회장 고발, "옥시와 더불어 용서해서는 안 되는 기업…]
이번에 CMIT/MIT 성분이 들어가 회수 조처가 내려진 아모레퍼시픽의 치약 제품에는 문제의 성분이 0.0044PPM 정도 든 것으로 파악됐다. 환경 당국의 독성 전문가는 "동물실험에서의 치사량 기준에 맞춰 단순 계산해보니, 몸무게 60㎏인 성인이 이 치약을 1432톤가량 먹어야 치사량에 이를 정도"라고 말했다. 극미량 들어 있어서 통상적인 치약 사용으로는 별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식약처는 아모레퍼시픽 외에도 CMIT/MIT가 든 원료를 납품받은 화장품·의약외품 제조사 10곳이 더 있다고 파악하고, 해당 물질이 든 원료 물질을 실제 썼는지, 썼다면 기준치를 넘겨 썼는지 등을 현장 조사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CMIT/MIT를 납품받은 곳 중에 가글액, 탈모 방지제, 염색약과 같은 의약외품 제조사에선 문제의 원료 성분을 쓰지 않은 것으로 잠정 확인했으며, 화장품류를 만들 땐 얼마나 썼는지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애경은 "샴푸 제품 중 일부에만 사용했지만 기준치(15PPM)보다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했고, 코리아나화장품도 "일부 제품에 기준치 이하로만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판기 한국환경보건학회장(용인대 산업환경보건학과 교수)은 "이번에 문제 된 제품은 건강에 위해한 수준이 아니지만 어린이·노인, 임신부 등 취약층이 쓰는 화학제품에 대해선 제품군별로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