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말에 운동장을 개방했더니 조기축구회가 허락도 없이 운동장 구석에 임시 컨테이너를 설치했습니다. 운동기구뿐 아니라 조리 도구까지 보관했다가 교내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습니다. 담벼락에 대소변을 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어른들이 담배꽁초나 빈 술병을 아무렇게나 버리고 가면 다음 날 등교한 어린이들이 치우는 일이 매주 반복되고 있습니다. (서울 A초교)
#2.배드민턴 동호회에 체육관을 개방했는데 네트 지지대와 의자가 부서지고, 화장실 세면대, 문짝, 샤워실 수도꼭지가 파손됐습니다. 강당 바닥에 덕지덕지 붙인 테이프를 떼지 않고 갑니다. 셔틀콕에서 빠진 깃털도 치우지 않아 학생들이 밟고 미끄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 운영비로 동호회가 망가뜨린 비품을 수리합니다. 주의를 줘도 그때뿐이고 고쳐지지 않습니다. (서울 B중학교)
지난 20~26일 서울시교원단체총연합회에 서울 초·중·고교 교장들의 하소연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난 9일 서울시의회에서 학교 시설을 일반 시민에게 개방하는 것을 학교장의 책무로 규정한 '학교 시설 개방·이용에 관한 조례' 개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유리창 깨고도 나 몰라라"
서울교총에 접수된 학교 개방으로 인한 피해 사례(2015년 이후)는 총 118건이다. 학교 시설물 파손 및 무단 사용(31.4%), 수업 방해 및 학생 안전 위협(20.4%), 교내 흡연 및 쓰레기 방치(16.9%) 등 유형이다. 동호회 모임이 끝난 뒤 음식을 해 먹으려고 학교 창고에 LPG 가스통을 숨겨 놓았다가 적발된 경우, "우리가 운동장을 사용하기로 했다"며 전국체전을 준비하는 초등학교 축구부를 방해한 사례 등이 포함됐다. 술에 취해 운동장에서 불을 피웠다가 인조 잔디를 태워 먹거나 야구공으로 유리창을 깨는 등 학교 시설물을 파손하고도 '나 몰라라'하는 경우도 많았다.
유병열 서울교총 회장은 "학교장이 개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지금도 학생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며 "시민 의식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무조건 개방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생활체육 시설 태부족… 개방 불가피"
이 같은 반발에도 서울시의회가 학교 시설 의무 개방을 추진하는 것은 "운동할 곳이 없다"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회 김생환 교육위원장은 "현실적으로 체육 시설 확대가 어려워 학교 시설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 시내 공립학교 926곳 중 832개교(89.8%)가 주말에 운동장을 일반 시민에게 개방하고 있다.
갈등이 커지자 서울시교육청은 28일 오후 긴급 브리핑을 열고 "학교와 학부모 등의 의견을 수렴해 수정 조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학교 시설 1일 사용 시간을 3시간으로 제한하고, 학교에서 취사·음주·흡연 행위를 하는 경우 사용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을 담아 11월 시의회에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생활체육 시설을 확보할 책임은 지자체에 있기 때문에 서울시에 학교 시설 사용료를 매칭 지원해줄 것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육현철 한국체대 교수는 "사전에 등록한 주민들만 학교 운동장을 이용하도록 하거나 학교 시설을 훼손하고 학생 안전을 위협한 경우 손해를 배상하고 다시는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등 먼저 합리적인 제재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