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퀴즈에 나온 우리 고유의 사투리와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사투리는 분명 다릅니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개그 프로그램의 사투리는 잘 알려진 억양이나 어미의 변화로만 사투리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한계는 있지만 대중문화에 사투리가 다양한 형태로, 자주 등장할수록 대중들에게 더 친근해진다는 건 분명합니다.
빠져든다… 표준어는 흉내 못 내는 '사투리 유행어'
과거 조폭 영화 속에 등장했던 단골 말투는 전라도 사투리였습니다. 영화 '친구' 속의 경상도 사투리와 쌍벽을 이루지요. 주로 무식하고 교양없는 스타일의 악역이나 건달, 조폭들이 투박한 사투리를 쓰는 것과 달리, 검사와 같은 사회 고위층은 표준어를 쓰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연은 표준어를 쓰고, 조연은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도 여러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었죠.
2010년, 전라남도 공보관실이 한국방송작가협회에 공문을 보낸 일이 있습니다. 당시 TV 드라마 '추노', '천사의 유혹' 등에도 전라도 사투리가 등장했는데, 이것이 전라도 사람들을 비하하고 웃음거리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이유였지요. 이런 사건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최근엔 특정 사투리가 악인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쓰이는 경우는 많이 줄었습니다.
2016년 미디어가 만든 최고의 유행어인 이 말도 전라도에서 왔습니다. 만약 표준어 대사였다면 "뭐가 중요하니?" 쯤이 될텐데, 아무래도 전국민의 뇌리에 콕 박히는 유행어로 발전하지는 못했겠지요.
TV 드라마에서 사투리 연기의 새 장을 연 건 '응답하라' 시리즈 입니다. 특히 배경이 부산이었던 '응답하라 1997'(tvN, 2012)은 이례적으로 대부분의 출연자가 감칠맛 나는 부산 사투리를 완벽하게 소화해 호평을 샀죠. 이후 등장한 드라마 '왔다!장보리'에서는 착한 여주인공의 친근한 전라도 사투리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조폭이나 쓰던 전라도 사투리가 여주인공 입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신선하다는 평이었습니다. 실제로 전라도 지역민들이 "오연서 사투리 듣는 맛에 드라마 본다"고 입을 모았을 정도라고 하죠. 요리사이자 방송인인 백종원도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의 덕을 톡톡히 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말도 지키고, 개성도 살리고… 사투리를 위한 노력들
대중문화 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사투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개성있고 인간적이라는 사투리의 특성을 잘 활용한, 마케팅이나 상품이 늘고 있기 때문이지요. 지자체와 기업들은 물론이고 각 지방의 토박이 청년들도 사투리 지키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2007년 9월부터 시작된 제주 올레길은 가장 대표적인 사투리 브랜드 사례입니다. '올레'란 큰 길에서 집 앞까지 이어지는 작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지요. 여기에는 '올래?'라는 이중적인 의미와 입에 착착 감기는 제주 사투리 명칭도 한 몫 했는데요. 제주도는 매년 가을마다 '제주올레 걷기축제'를 열어 제주의 자연과 문화, 먹거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제주 방언으로 '제주입니다'를 뜻하는 '제주마씸'은 제주지역 중소기업 제품의 홍보를 위해 탄생한 공동 브랜드입니다. 제주의 특산물인 감귤, 은갈치, 고등어, 한라봉 등 다양한 업체들이 '제주마씸' 상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타주엉 고맙고 다들 맹심행 잘들어갑써. 담에 또 보게마씸예~" 한때 서울과 부산에서 제주로 가는 제주항공을 탑승한 승객들은 이런 맛깔나는 사투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주항공에서 고향의 정겨움을 선사하기 위해 마련한 이벤트였는데요. 반응은 매우 뜨거웠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제주토박이 여자 승무원 3명이 사투리 기내 방송을 맡았는데, 이를 위해 제주도에 사는 할머니와 매일 통화를 하며 연습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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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시민 공모전을 통해 탄생한 브랜드 '타슈'는 외지인에겐 언뜻 독일어를 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데요. 이 '타슈'라는 명칭이 '타요'의 충청도 말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누구든 미소를 짓게 됩니다. 지역 특색을 완벽히 반영한 이름 때문일까요? '타슈'는 이제 대전에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꼭 타봐야 할 '명물'이 되었고, 타 지역에게 벤치마킹의 모범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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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이 2006년 출시한 소주 '좋은데이'는 '~데이'라는 부산 사투리에 '좋은'이 더해져 탄생했습니다. '좋다'와 'Goodday'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친근감 있는 명칭으로 부산·경남을 대표하는 소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투리를 활용해 이름을 지은 소주 '즐거워 예'와 경쟁하기도 했습니다.
래퍼 술제이와 보컬 김보선이 부른 는 이렇게 흘러갑니다. 경상도 남자의 입장에서 쓴 이 고백 노래인 셈인데요. 는 정식 방송을 하기도 전에 SNS 입소문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들이 굳이 사투리로 노래 가사를 쓴 이유는 재미를 위해서였습니다. 표준어로 된 김보선의 노래 가 있는 상태에서 를 만들었는데, 함께 가사 작업을 하면서도 엄청 웃었다고들 하지요. 그래서 보컬 김보선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서울 사람들은 '안겨~' 이러는데, 부산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말하죠. '뭐하노, 안 앵기고' 이렇게. 가사 작업할 때 너무 재미있었어요." ▶ 기사 더보기
흥겨운 리듬에 취해 가만히 밴드 '사우스카니발' 노래를 듣다가는 어느 순간 당황할지도 모릅니다. 제주 토박이가 아니고서야 해석이 불가능한 가사가 줄을 잇기 때문이죠.
'사우스카니발'은 '제주말 노래를 제주에서 녹음했다'는 독특한 이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제주도의 이미지가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단지 '힐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하고 역동적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제주 토박이말이 잔뜩 들어간 이들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유치원 교재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 기사 더보기
사전 하면 표준어사전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요. 지역별 방언 사전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습니다. 사라지려는 고유의 지역말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려는 노력의 일환이지요.
서울 한복판에서도 사투리 사전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정독도서관에는 지역 방언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는데, 이곳에는 부산·남해·예산·강릉 등으로 세분화 된 사투리 책이 서가 두 칸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도 남북한, 해외동포 언어까지 20만 개의 방언을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요. ▶ 기사 더보기
우리말의 전통을 품고 있는 사투리가 소중하다는 건 이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지자체는 물론, 국가까지 나서 사투리 보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역시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지요. 그러나 구체적인 실현 방법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서울말만 표준어'라고 법으로 규정한 '표준어 절대주의'가 사투리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래도 공식적인 표준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언어는 쓰는 이가 없으면 소멸되기 마련입니다. 사전 속에 잠자고 있기만 해서는 진정 살아있는 언어가 될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팔도 사투리가 자유자재로 쓰이는 문학 작품과 영화, TV 프로그램도 나올 수 있을까요? 잠들어 있는 사투리를 깨우기 위한, 우리의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