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의 본래 뜻은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을 일컫습니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각 지방에 뿌리를 내리고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투리는 '틀린 말', '촌스러운 말'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애가 배운다고, 취업 못 한다고, 노인들이 쓰는 말이라고 홀대받는 사투리의 현실을 정리했습니다.

가을날 붉은 감잎을 보며 "오매 단풍들것네" 하던 김영랑 시의 전라도 누이와, 떠나가는 연인에게 "뭐락카노" 외치던 박목월 시 속 경상도 주인공은 '교양 없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지난 2006년, 표준어의 정의에 반기를 드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8도 지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표준어 논쟁'

국어 교과서에서 한번쯤 보았듯, 한국어의 표준어란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1988년, 문교부 고시)이라고 규정되어 있죠. 그런데 지역말 연구·보존 모임인 '탯말두레'가 이러한 표준어의 정의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 교육권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방점이 찍히는 부분은 '교양 있는'과 '서울말'이라는 조건이었습니다. '탯말두레' 회원들은 "방언을 쓰면 교양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냐"고 주장했습니다.

'서울말' 손 들어준 헌재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2009년 나왔습니다. 결국 '서울말'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헌재는 헌법 소원의 기각 이유에 대해 "공문서에 사용되는 국어가 표준어로 통일되지 않으면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면서, "서울의 역사성, 문화적 선도성, 사용 인구 최다성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기준"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지역 언어를 쓰는 데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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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DB

다수(多數)가 쓰면서도, 홀대받는 '사투리'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서울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소리공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서울 토박이말의 억양과 발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표준어와 다르다고 합니다. 서울시는 1910년 이전부터 3대(代) 이상 서울에 살고 있는 경우를 '토박이'로 보고 있는데, 2007년 기준으로 이 수는 서울 인구의 4.6% 정도였습니다.

어찌됐건, 우리는 표준어와 사투리가 공존하는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점차 수도권 중심의 사회가 형성되면서, 사투리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상황 1. "우리 애 억양이… 어린이집 선생님 바꿔주세요"
전남 나주 혁신도시로 일터를 옮긴 한전 직원 김모(32)씨는 다섯 살 딸아이의 '유창한' 전라도 사투리에 놀랐다.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느냐'는 질문에 아이는 웃으며 "워메 여는 전라도랑께"라고 답했다. 회사 근처 어린이집에 맡긴 지 석 달쯤 된 날이었다. 김씨는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회사 복지팀에 전화를 걸었다. "어린이집 선생님 좀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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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2. "'몬해꼬' 아니라 '못했고'죠? '근강' 아니라 '건강'이고요"
경북 경산에서 일하다 서울로 직장을 옮긴 박모(38)씨는 요즘 사투리 교정을 위해 스피치 학원에 다닌다. 박씨는 "고객들이 내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여러 번 되물을 때마다 자신감이 없어졌다"며 사투리를 교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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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아대는 면접 때 불이익을 당할까 봐 걱정하는 여대생들을 위해 '사투리 교정 클리닉'을 연다. 이 과정을 개설한 동아대의 관계자는 "여학생이 취업할 수 있는 곳은 서비스·관광 등 제한적이고, 표준어가 필요한 분야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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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3. "풍당풍당 물씨듯 썸시냐?"… "할머니, 뭐라구요?"
제주도에서 쓰는 '제주어'는 2010년 유네스코로부터 소멸위기 언어 4단계로 지정됐다. 유네스코는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언어를 총 5단계로 분류하는데, 5단계는 이미 소멸된 언어다.
실제로 제주도의 중·고교생은 사투리를 잘 모른다. 제주대학교에서 중고생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학생의 90% 이상이 아는 어휘는 아방(아버지), 어멍(어머니), 하르방(할아버지), 할망(할머니) 4개에 그쳤다. 대부분 청소년들은 조부모가 쓰는 제주어를 알아듣지 못해 부모의 '통역'을 거쳐 대화를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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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의 홀대와 소멸 위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언어학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투리라 할 수 있는 제주어는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요. 현재 제주어를 쓰는 70~80대 노인들이 사라지면 제주어도 함께 사라질거란 겁니다. 언어의 소멸은 단지 글자와 말이 없어지는 걸 넘어, 그 지방의 전통과 문화, 신화까지도 사라진다는 점에서 뼈아픕니다. 제주 뿐 아니라 다른 지방도 남의 얘기가 아니죠.

그나마 다행인 건, 요즘들어 미디어를 통해 사투리의 위상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자체별로 지역어를 보존을 위해 노력해온 결과, 젊은층에서도 이에 공감하여 사투리로 된 노래를 내놓거나 브랜드를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2편에서는 좀 더 친근해지고 있는 사투리와 달라진 인식들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