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수라'(감독 김성수) 속 그들의 얼굴을 본다. 정우성·황정민·곽도원·주지훈·정만식. 그들의 얼굴은 어떤 장르도 어떤 세계도 될 수 있다. 이 배우들의 얼굴은 그 자체로 누아르며 하드보일드다. 고담이고 신시티다. 이들이 '아수라'에서 체화(體化)하려는 건 '약육강식의 범죄특별시 안남'이다. 영화는 '안남이 돼라'며 다섯 배우의 얼굴을 뭉개고 구긴다. 이들은 찡그리고 찡그려 안남을 만들고, 잘리고 부서지고 피 흘리고 쓰러진다. 이 모습을 보며 스스로 감탄하는 게, 영화 '아수라'다.
'아수라'는 철저히 조형된 세계다. 현실에 빛과 어둠이 있다면, 안남에는 어둠만 있다. 법도 공권력도 없다. 그러니 정의가 있을 수 없다. 요컨대 '아수라'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폭력' 상황을 그린다. 무수한 과장과 왜곡, 뒤틀림이 있어도 누아르는 그런 세계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런 세계를 통해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무엇인지 짚어내는 것이다. 최근의 사례로 보면, 그건 장르적 쾌감이 주는 에너지('신세계')일수도 있고, 거칠지만 강렬한 메시지('내부자들')일 수도 있다. 둘 다 일수도 있다('무간도'). 그렇다면 '아수라'는 어디에 있는가.
안남 시장 박성배(황정민)는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경찰 한도경(정우성)에게 돈을 주고 온갖 더러운 일을 맡긴다. 검찰은 이런 박성배의 비리를 캐내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방식, 그러니까 한도경에 의한 폭력으로 사건을 해결해 간다. 그러자 검찰 수뇌부는 검찰 내 성공을 간절히 원하는 검사 김차인(곽도원)을 투입, 이번에는 한도경을 압박해 간다. 한도경의 약점을 틀어 쥔 김차인은 그를 점차 옥죄어 가고 한도경은 박성배와 김차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아수라'가 그리는 누아르 공간은 인상적이다. 이 작품의 '로케이션'은 김성수 감독이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9)에서 청춘의 공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던 것을 일부분 떠올리게 한다. 질서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주택가, 그 속을 미로처럼 뻗어나간 어두운 골목길, 축축하게 젖은 시장통, 그리고 그 안에는 각자의 욕망을 위해 달리는, 동정할 수 없는 미친 인간들이 있다. 이들은 때리고 얻어맞고, 총을 쏘고 칼에 베이고, 협박하고 겁박당한다. '아수라'는 처절하기에 관객 중 일부는 이 영화의 공기에 짓눌리다가 수위 높은 폭력에 눈을 감을 수도 있고, 다량의 욕설에 지쳐 나가떨어질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작품이 보여주려는 건 무겁고 어둡고 축축한 핏빛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일 것이다. 꼼꼼한 스케치로 분위기를 완성했으니 이제 이 그림은 서사와 캐릭터로 채워져야 하나 '아수라'는 이 지점에서 크게 흔들린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위기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전진을 멈춘다. 에피소드는 나열되지만, 이것은 모두 같은 위기이기에 '아수라'의 인간들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기만 한다. 캐릭터는 도약하지 못한다. 세 명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은 내내 당황하고, 다른 한 명은 화만 내며, 또 다른 한 명은 겁만 준다.
이 치명적 약점은 이 영화의 장점들을 집어 삼킨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는 상찬(賞讚)할 만하다. 다섯 배우는 열연한다. 호랑이 같이 달려들고, 뱀같이 서로를 휘감으며, 사냥개처럼 물어뜯고, 토끼처럼 긴박하다. 그러나 서사가 한 곳을 맴돌고 캐릭터가 정체돼 있으니 이들의 연기는 잠시 강렬할 뿐 긴 울림을 남기지 못한다. 촬영 또한 같은 맥락에서 안타깝다. 특히 카체이싱 장면이 그렇다. 이전의 한국영화에서 보여준 적 없는 방식으로 촬영돼 신비롭기까지 한 시퀀스이지만, 이야기와 인물에 섞이지 못한 이 장면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해 카체이싱을 위한 카체이싱으로 보일 뿐이다.
그러니, 이 작품을 나 보고난 후 관객의 마음에 남는 건 쓰러진 인간들에 대한 연민이 아닌 그들의 고꾸라짐에 대한 의구심이다. '아수라'의 짙은 어둠과 지독한 폭력이 도대체 어디를 향한 것인지 알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옥같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비유라고 하기에, '아수라'의 지옥은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지옥에 불과한 것으로 보여 어설프다. 장르영화가 주는 재미를 말하기에는 '아수라'의 서사와 캐릭터는 단순하고 밋밋하다.
다소 과하게 표현하자면, '아수라'는 자신이 만든 '지옥과 같은 혼란의 멋들어짐'에 스스로 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얽히고 설킨 다섯 인물이 한 자리에 모여 에너지가 폭발하는 장면이 일부분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는 건 좋지 않은 징조다. 과녁 없이 폭력을 난사하고, 최소한의 감정적 설득 없이 파국을 맞이한 인물들이 어설프게 비장한 대사를 내뱉는 건, 관객이 '아수라'에 원했던 게 아닐 것이다.
한도경은 "형사의 직감같은 건데요. 여기서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아수라'를 상징하는 대사다. '아수라'는 지옥을 그리려 했지만,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그 그림에 스스로 빠져버렸다. 물론 이 다섯 배우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이들을 한 영화에 모으기 그만큼 힘들기 때문에 '아수라'는 두고두고 아쉬운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