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시한폭탄을 발견한 순간, 폭탄에 장착된 디지털 시계는 늘 5분에서 4분 59초로 넘어가고 있다. 관객들은 5분을 몇 초 남기고 폭탄이 해체되며 영화가 곧 끝날 것을 직감한다. 뻔한 할리우드식 결말임을 알면서도 저 폭탄을 어떻게 해체해 지구 평화를 지키고 먼지투성이 남녀 주인공이 키스를 하며 끝날까 기대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때 폭탄에 달린 타이머는 늘 10분의 1초까지 찍힌다. 맨 끝 숫자가 초 단위로 줄어들면 한가해 보이기 때문에 10분의 1초 단위로 정신없이 줄어드는 것이다. 성질 급한 관객들은 한쪽 다리를 1초에 열 번씩 떨며 다음 장면을 기다린다.
서울시청 근처 한 건물 외벽에 보지 못했던 대형 디지털 시계가 등장했다. 이 시계는 10분의 1초까지 표시된다. 즉 '○○시 ○○분 ○○초 ○'까지 표시되는데 7번째 숫자가 1초에 열 번이나 바뀌어서, 보기만 해도 정신이 없다. 꽤 높은 건물 4층쯤 이 커다란 숫자 시계가 달려 있어 건물 전체가 할리우드 영화 속 시한폭탄처럼 보이기도 한다. 볼 때마다 공연히 긴장되고 조급한 마음이 든다. 오늘도 이 시계 기준으로 12시 05분 23초 4에 그 앞을 지나가 점심을 먹고 12시 52분 48초 7에 그 앞을 지나 회사로 돌아왔다. 서울시 청사 꼭대기에 달린 아날로그 시계로는 12시 좀 넘어 나갔다가 1시 좀 못 미쳐 들어왔는데 말이다.
10분의 1초 단위가 쉴 새 없이 바뀌는 그 시계를 보면 공연장 사이키 조명을 보는 듯하다. 단조로운 숫자의 빠르고 반복적인 변화는 쳇바퀴 돌 듯 그 건물 앞으로 출근했다가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상징하는 기괴한 설치미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건물주가 왜 초 단위도 부족해 10분의 1초까지 표시되는 시계를 골라 설치했는지 모르겠으나 눈길 끌려는 의도였다면 성공했다.
다만 시간에 늘 쫓기는 월급쟁이 입장에서는 그 거대한 0.1초짜리 시계가 영 불편하다. 시간이 쏜살같이 빠르다는 사실을 1초에 열 번이나 알려주니까 말이다. 세월 빠른 건 달력 한 장 넘길 때마다 새삼 깨달아도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