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집 전체가 '쿵쿵' 흔들리자마자 밖으로 냅다 뛰었지 아입니까. 이 나이에 살아보려고…."

지난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의 강진(强震)을 겪은 경북 경주시 황남동 한옥 마을. 주민 장태름(79·여)씨는 20일 "어제(19일) 또 강한 지진을 겪으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오더라"라며 몸서리를 쳤다. 물 새는 화장실이며 집 안 곳곳에 갈라진 벽을 가리키는 장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나마 장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이날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와공(瓦工·기와를 이는 기능인) 40여 명이 무료로 지붕 기와 수리를 도와줬기 때문이다.

황남동은 전통 한옥이 밀집된 곳이다. 전체 3317가구 중 한옥이 1658채다. 이 중 670여 채는 기와가 떨어져 나가거나 벽체에 금이 가는 손상을 입었다. 아직도 부서진 기왓장이 골목 곳곳에 떨어져 있었다. 지진이 남긴 상처였다. 경주 전체 주택의 20%를 차지하는 한옥 1만2800여 채(사찰 포함) 중 2031채가 파손됐다. 지붕에 천막을 덮는 등 임시로 복구한 집은 500여 채에 불과하다. 나머지 집들은 지난주 내린 폭우에 노출됐다. 한옥의 서까래나 기둥에 물이 스며들면 썩기 쉽다. 복구를 해도 원상태로 돌아가긴 어려울 전망이다.

◇고도(古都) 보존법이 피해 초래

경주엔 한옥이 많다. 황남동을 비롯해 인왕동·사정동·구황동·내남면 등엔 기와지붕을 한 한옥이 즐비하다. 경주시는 한옥보전지구에서 한옥을 신축하려는 건축주에게 최고 1억원까지 지원한다. 보전지구가 아닌 곳에서 한옥을 짓겠다는 사람에게도 7000만원까지 지원해 준다.

20일 오전 경북 경주시 황남동의 한 식당 지붕 위에서 인부들이 지진으로 깨진 기와를 걷어내고 새로운 기와로 교체하고 있다. 경주시에 따르면 지진 피해를 당한 황남동 한옥 1658채 가운데 670여채의 기와가 깨지고 건물 벽체에 금이 간 것으로 조사됐다.

["경주 서둘러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야"]

이번에 경주에서 유난히 한옥 피해가 컸던 것은 '고도(古都)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고도보존법)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라 천년 고도의 역사, 문화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2011년 제정된 이 법은 건물의 신축과 증·개축 등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경주시는 또 황남동과 인왕동에 대해선 한옥 신축과 개축, 한옥 건축 양식 수선 등을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하며 한옥 장려책을 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전통 한옥이 밀집된 두 한옥지구에 피해가 집중됐다. 한옥 지붕은 기와·흙 등으로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건물이 흔들렸을 때 기와가 떨어져 나가는 등의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피해액만 35억5000만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수리가 급하지만 도시 계획 조례에 따라 기와가 아닌 자재로는 지붕을 바꿀 수가 없다.

문화재기능협회에 등록된 기와 기능공 614명 중 실제 활동하는 사람은 150여 명 정도라고 한다. 이들은 지진이 나자 경주에 모여들고 있지만 피해가 생긴 주요 문화재를 우선적으로 손보고 있다. 일반 한옥 보수를 하기엔 시간이 한참 더 필요할 전망이다. 한 기능인은 황남동 한옥 기와지붕을 모두 수리하는 데 적어도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피해 복구 관련 법 규정도 손봐야

국민안전처가 만든 '자연 재난 조사 및 복구 계획 수립 지침'은 지방자치단체의 피해 신고 접수와 확인, 중앙재난피해합동조사단의 현장 조사 등을 거쳐 피해 규모와 금액을 확정하는 데 걸리는 기간을 최장 31일로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진 촬영 등으로 피해 신고 규제를 간소화하고, 현장 조사 기간을 크게 줄여야 2차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한옥 피해 지원 정책에도 허점이 있다. 안전처 지침엔 전파(全破) 혹은 반파(半破)된 주택에만 복구비의 일부를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기왓장이 떨어지거나 벽체에 금이 간 한옥은 보상받을 수 없다. 고도보존법엔 태풍 등의 재난으로 인한 피해 보상 규정은 없다.

정문길 한국문화재기능협회장은 "현장 실무자들이 기존의 기와 잇는 방식엔 문제가 있다고 그동안 여러 차례 정부에 건의를 했지만 무시당했다"면서 "기와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시멘트와 석회를 써서 기와를 지붕에 단단하게 고정하는 현대적인 건축 방법을 도입해야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