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 여름, 세계 곳곳에 UFO 군단이 나타나 도시 상공을 뒤덮는다. 지구를 침공하려는 외계인들이다. 정현석(39)씨는 "이들과의 결투 끝에 가까스로 승리했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B급 영화가 아니다. 조현병 환자 정현석씨는 자신이 과거 이런 일을 겪었다고 믿고 있다. 정씨는 무슨 이유로 조현병에 걸린 것일까, 조현병에 걸린 그에게 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그의 하루를 지켜봤다.
정현석씨와 정씨 가족의 동의하에 취재를 진행했다.
비가 내리던 지난달 31일 오전 9시 구로디지털단지역사 안. 역무원과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목소리를 높여가며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승강기 고장으로 휠체어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 장애인은 이 때문에 화가 난 것. 그때 남색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한 남성이 이들에게 다가왔다. 역무원과 함께 휠체어를 들어 역 밖까지 이동시켰다. 잠시 후 역 안으로 돌아온 그가 다가왔다.
"기자님이시죠? 페이스북(SNS)에서 본 얼굴과 똑같아요"
오늘 만나기로 한 조현병을 안고 살아가는 정현석씨였다. 자신이 정현석이라고 밝히지 않았다면, 그저 '의로운 시민'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정씨의 첫 발병은 20세 군 입대를 앞둔 시점이었다.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길,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에 정현석의 몰래카메라를 찍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군 입대를 앞두고 열흘쯤 불면에 시달린 탓이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만 수근거리는 느낌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친구들과 술을 먹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환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창문 사이로 비친 건 UFO가 침공하는 모습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병원을 찾은 정씨는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가족들에 의해서 바로 '입원조치'를 당했다. 군입대는 취소됐다. 입원했지만 쉽게 병이 낫지는 않았다. 그는 "홀로 지구를 지켜냈고, 각 나라의 정상(頂上)들이 '지구를 지켜줘 고맙다'는 인사를 텔레파시로 보내왔다"고 했다. 정씨는 자신이 입원한 병동이 '외계인들이 자신을 납치해 끌고 온 기지'라고 생각했다.
9개월간 약을 처방받고 치료를 받으면서 환청과 환각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이곳이 정신병동이고 나는 인간 정현석이다"라는 사실을 비로소 인지하기 시작했다.
9개월 만에 나온 세상은 달려져 있었다. 정씨가 알던 친구들은 모두 군대에 가있었고 핸드폰과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정씨는 "그때 가지고 있던 삐삐처럼 내가 초라하게만 보였다"며 "주변 사람들이 나를 저능아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폭력적인 성향까지 생겼다. 정동장애(조울증)라는 판정까지 받았다. 결국 다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해야 했다. 세상과 단절된 채 수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렇게 정씨는 20대를 집과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2007년 정씨는 정신장애인 사회복귀를 돕는 복지관에서 바리스타 일을 배웠다. 주 5일, 하루 5시간 일한 그의 한 달 월급은 5만원. 식대나 차비를 제하면 손에 쥐는 건 없었다. 당시 최저시급기준 3,480원에 비해도 턱없이 모자란 급여였지만, 정씨의 월급 5만원은 현행법상 '합법'이다. 최저임금법은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낮은 자'에 대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최저임금의 적용 제외' 규정을 두고 있다. 정씨는 "그래도 바리스타로 다시 사회로 복귀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2011년 한 커피 업체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갔다. 열심히만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씨는 1년을 일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함께 입사한 사람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정씨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정씨는 "남들과 똑같이 일했지만 '장애인이라 정규직이 안 된다'는 소리에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2012년에는 한 기업이 대학에서 운영하는 분식형 카페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2년이 되기 전, 회사는 퇴직 처리 후 다시 계약을 갱신하자고 했고 정씨도 거기에 응했다. 정규직 전환에 불리할까 봐 선뜻 불만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정씨. 그는 3년을 계약직으로만 근무한 뒤 떠나야했다. 정씨는 "일한 시간만큼만 인정해줘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은데, 장애인이니까 100만 원 이상 안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정씨는 지난 8월부터 정신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상근직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나를 바라보는 편견에 떳떳하게 맞서고 싶었어요."
정씨는 상근활동비로 받는 40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 식비가 부담이 돼서 도시락을 사와야겠다는 그는 "경제적으로 빈곤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한국사이버평생교육원을 통해 사회복지사 2급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전문적 지식을 익혀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한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다.
정씨가 아는 교수직, 변호사 전문직 종사자 중에도 조현병 환자가 있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 성인이 돼 발병하거나 직업을 겨우 구한 이도 환자인 것이 알려질까 조심한다. '정신병'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 받을 편견의 시선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의학계에서는 국내에 중증 정신질환자를 50만명 정도로 추산하지만, 실제 한 번이라도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4년 기준 10만 명을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센터를 나와 정씨의 집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개찰구를 지날 때 정씨가 말했다. "혹시 아시겠어요? 삐빅이요"
경로우대증을 가진 노인이나 장애인은 개찰구에 카드를 찍으면 '삑'소리가 두 번 난다. 정씨는 "사람이 많은 출·퇴근시간에 역무원이 경로나 장애우대증 부정사용 여부를 확인하러오면 부끄럽다"고 말했다.
독산동의 한 주택의 단칸방이 정씨의 집이다. 5평(16.5㎡) 남짓한 방에서 그는 블로그와 SNS에 하루하루의 일과를 기록하고 있다.
"나를 소개하는 공간이지만 나뿐아니라 정신장애인을 이해하기 쉽게 만든 공간이죠."
정씨가 하는 활동에는 이들의 자립을 위한 당사자 연구도 있다. 평균 10~15명의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모여 증상을 얘기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생활을 할지에 대한 대화다.
정씨는 "멘토, 멘티가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방향으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4월 정신장애인에 대한 내용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 '날, 보러와요'의 제작진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 사과 답문을 받기도 했다. 정씨는 "강제 입원이라는 자극적인 설정만 있을 뿐 정신질환자의 성에 대한 집착만을 그렸다"고 말했다.
정씨는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활동가라는 특수한 직업을 제외하면 남들처럼 직장을 다니고 가끔 친구들과 만나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밤이 되면 또다시 현실을 깨닫는다. 4알의 약을 목으로 넘길 때. 정씨가 가장 두려운 건 정신병의 재발도 아닌 남의 시선이다.
"내가 입을 열면 주위의 눈총과 시선의 따가움을 종종 느꼈다. 같은 말을 해도 다른 사람이 얘기하면 웃어넘기지만."
'나를 정신병자라고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그는 이런 생각으로 20대를 보냈다. 정씨는 현재 목표는 "병과 함께 잘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