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은 1978년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역대 최강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이웃 일본에선 최근 1년 동안에만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20건이나 일어났다. 이처럼 잦은 지진에도 건물 붕괴나 인명 피해가 비교적 적다는 것이 일본의 힘이다. 그들이 평소 얼마나 철저하게 대비하는가를 한눈에 보여준 게 지난 4월 일본 남부를 뒤흔든 구마모토 지진이다.
◇첫 1시간
지진 발생 첫 1시간 동안 일본 정부는 시간 낭비 없이 움직인다. 4월 14일 밤 9시 26분,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6.5 지진이 났다. 지진 발생 3.7초 만에 NHK를 비롯한 전 TV에 지진 경보 자막이 떴다. 경주에선 27초 만에 경보가 발령됐다.
연중 24시간 운영되는 총리관저 위기관리센터는 1보를 받자마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에게 보고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시부야(澁谷)구 프랑스 식당에서 자민당 간부들과 회식 중이었다. 그는 지진 발생 10분 만에 "피해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라"고 지시한 뒤 9시 50분 관저에 복귀했다. 지진 발생 24분 만이었다. 이어 밤 10시 10분, 정부 차원의 비상재해대책본부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구마모토 현지에서 가바시마 이쿠오(蒲島郁夫) 지사가 "자위대와 소방청 구조대를 파견해달라"고 SOS를 보냈다. 곧바로 중앙정부가 자위대 350명, 소방청 구조대 200명, 다른 지자체 경찰관 200명을 보내주기로 했다.
지진 발생 직후부터 NHK는 물론 민영방송까지 모두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지진 속보를 내보냈다. 스가 관방장관이 지진 발생 약 50분 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원전 가동에 이상 없다"고 발표해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첫 사흘
구마모토 현지에서는 첫 지진이 난 지 26시간 만에 그보다 더 센 규모 7.3의 본진(本震)이 왔다. 폭우까지 쏟아지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총리관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각 부처가 톱니바퀴처럼 자기 역할을 했다. 자위대·소방청·경시청이 구조인력을 보냈다. 총무성은 인터넷이 끊긴 재해 지역에 무선랜 설비를 장착한 차량을 급파했다. 후생노동성은 현지 대학병원에 의료팀을 파견하고, 국토교통성은 조명차를 보냈다.
업무상 직접 관련이 없는 부처도 손 놓고 있지 않았다. 법무성이 상속신고를 포함한 각종 일상적인 행정절차 기한을 연장했다. 피난민들이 대피하는 와중에, 다른 걱정까지 하지 않도록 하려는 조치였다.
◇한신대지진의 교훈
일본은 지진 연구비로 한 해 146억엔, 재해예방·인력양성·피해복구 비용으로 46억엔을 쓴다. 그 배경에는 지진에 대한 공포와 경각심이 깔려 있다. 일본 중앙방재회의는 '도쿄를 포함한 일본 수도권에서 30년 안에 규모 7 이상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70%'라고 보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단단하게 짓고, 끊임없이 훈련한다'는 말로 압축된다. 일본은 1995년 규모 7.3의 한신 대지진으로 6400명이 숨진 뒤, 건축법상 내진 설계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사망자 80% 이상이 건물에 깔려 숨진데 대한 반성이었다. 이후 한신 대지진보다 더 센 동일본 대지진(규모 9.0)이 왔지만, 쓰나미 희생자가 대다수였지 건물 붕괴 사망자는 많지 않았다. 현재 일본은 전국 주택 5200만호 중 4300만호(82%), 상가·관청 등 다수가 이용하는 건물 42만동 중 36만동(85%)이 내진설계 건물이다. 2020년까지 이 비율을 90%대로 끌어올리는 게 국토교통성의 목표다.
실전형 대비 훈련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작년 9월 일본 정부는 '도쿄 서쪽 다마(多摩) 지구에 규모 7.3 지진이 발생해 2만3000명이 사망했다'는 가정하에 자위대부터 주부까지 민관 167만2000명이 참여하는 실전형 훈련을 실시했다. 도쿄를 둘러싼 순환도로를 통제하고, 내각 각료들이 걸어서 총리관저에 출근했다.
지난 7일에는 도쿄 국회의사당 중의원 본회의실에서 '총리 연설 도중 지진이 터졌다'는 가정하에 모의 훈련이 진행됐다.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이 앞장서서 헝겁에 두툼한 솜을 두른 '방재용 두건'을 뒤집어쓰고 책상 밑으로 숨는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훈련이 실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