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2월 김정일이 죽은 뒤 권력을 잡은 김정은은 국제사회의 숱한 권고와 압박을 무시하고 핵과 미사일 폭주(暴走)를 계속했다. 북한의 9일 5차 핵(核)실험은 32세 독재자 김정은의 손에 거의 완성된 형태의 '핵미사일'이 쥐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핵실험' 또는 '수소탄실험'이라고 했던 지난 1~4차 때와 달리 이번에는 '핵탄두(彈頭)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미 발사에 성공한 노동·무수단·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 각종 미사일에 장착할 핵탄두를 실제로 만들어 폭발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군과 정보 당국은 그동안 북한이 핵폭탄 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각각 성공했지만 이 둘을 결합하는 기술, 즉 핵폭탄을 탄두에 집어넣을 만큼 소형화해 미사일에 장착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봤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날 핵탄두 개발 성공을 넘어 '표준화' '규격화'했다면서, "각종 핵탄두를 마음먹은 대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국가정보원도 이날 국회 보고에서 "북한은 스커드미사일에 장착할 정도로 탄두를 소형화하는 것이 목표인데 당초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고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보유는 6·25 전쟁 이후 63년간 유지돼온 남북 간 군사적 균형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동북아 안보 지형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한반도는 물론, 미국에까지 핵미사일 공격을 가할 수 있게 된 이상 한·미의 안보 전략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장 핵미사일을 가진 북을 상대로 미국이 선제타격을 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국방부는 이날 북핵 위협에 대응해 기존의 킬체인, KAMD(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 외에 KMPR(대량 응징 보복)을 추가해 '한국형 3축 체계'를 수립하겠다고 했지만 기습적인 핵 공격을 막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이번 핵실험은 북한이 정권 수립(공화국 창건) 68주년을 맞은 9월 9일 오전 9시(평양 시각)에 진행됐다. 라오스에서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심야 안보상황 점검회의에서 "권력 유지를 위해 국제사회와 주변국의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 불능"이라며 "이제 북핵 위협은 급박하게 닥친 현존하는 위협인 만큼 우리와 국제사회의 대응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김정은이 국제사회의 제재에 굴하지 않는 강한 지도자란 점을 부각시키고 상납적 수탈과 대량 탈북 등으로 인한 내부 동요를 차단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의 '핵 폭주'는 결국 핵 보유를 지렛대 삼아 국제사회로부터 자신의 체제를 보장받기 위한 것이다. 파키스탄은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에도 6차례 핵실험을 진행한 끝에 1998년 독자적으로 핵보유국을 선언했고, 이후 '비공식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문제는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도 북핵에 대응할 마땅한 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북한 핵실험 직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통화해 양국 공조 방안을 논의했지만 눈에 띄는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정치권 일부에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독자 핵무장론 등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