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주부 이모(42)씨는 최근 남편 통장에서 한 식품 회사로 15만원이 이체된 것을 발견했다. 남편은 "어머니가 전화로 '건강 보조 식품 값을 계좌 이체로 보내야 하는데 인터넷 뱅킹을 할 줄 모르니 대신 내달라'고 부탁해 해드렸다"며 "이번 추석에 만나면 현금으로 주신다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는 불편한지 자꾸 남편한테 이런 심부름을 시킨다"면서 "시어머니에게 돈을 꼬박꼬박 받아내기도 어려워 어지간히 큰돈이 아니면 그냥 용돈 드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은행 거래를 하는 온라인 뱅킹이 확산되고 있지만, 60세 이상 이용률은 바닥에 가깝다. 이 때문에 60세 이상이 '온라인 뱅킹의 소외 계층'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는 고객 중 60세 이상은 8.5%에 불과하다. 60세 이상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19.1%)의 절반도 안 된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모바일 뱅킹은 60세 이상 비율이 5.7%로 더 낮다. 지난해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연령별 인터넷 이용 실태 조사'에서도 60대 가운데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는 비율은 16.5%, 70세 이상은 3.6%에 그쳤다. 30대(80.2%)나 40대(64.7%) 이용률과 천양지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스마트폰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60·70대는 친구들 사이에서 '신세대'로 통한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최모(75)씨는 손자 며느리에게 스마트폰으로 용돈을 보내줬다가 "할머님 정말 신세대시다. 친구들한테 자랑해야겠다"는 말을 듣고 어깨가 으쓱했다고 한다. 최씨는 "경로당 할머니 중에 스마트폰 뱅킹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 뱅킹을 쓰려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은행 공인인증서를 내려받고, 각종 보안 프로그램을 깔아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60대 이상이 독학(獨學)으로 터득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이다.
그렇다고 자녀나 손주들에게 이용법을 배우기도 쉽지 않다. 보이스피싱(전화 사기) 같은 금융 사기를 우려해 자녀들이 노부모(老父母)에게 온라인 뱅킹 방법을 잘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원 김모(35)씨는 최근 어머니(66)가 "인터넷 뱅킹 쓰면 편하다더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냥 은행 창구 가서 거래하시라"고 했다. 김씨는 "노인들 대상 금융 사기가 횡행하기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창구 거래가 안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5년 7월까지 금융 당국을 사칭한 금융 사기 피해자 2866명 가운데 60대 이상이 1025명으로 36%를 차지했다. 금융 사기범들은 노인들을 노리고 '계좌가 범죄에 악용됐으니 예금을 다른 계좌로 이체하라' '자녀가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하니 수술비를 보내라' 같은 수법을 사용한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은행 창구를 이용하면 온라인 뱅킹보다 비싼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은행이 인건비가 들지 않는 온라인 뱅킹에 우대 수수료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주요 시중은행은 다른 은행 계좌로 100만원을 이체할 때 모바일이나 인터넷 뱅킹 수수료는 500원이지만 창구 거래 수수료는 2000원으로 네 배나 된다. ATM(현금 자동 입출금기)을 이용하면 700~1200원이 든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각종 행정 서류를 인터넷으로 발급할 정도로 온라인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디지털 문맹(文盲)인 노년층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100세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노년층이 새로운 기술 문명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평생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