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세계에선 돈을 좇아 팀을 옮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식 중의 상식'을 뒤집은 선수가 있다. 친정팀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14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에서 일본 프로야구로 돌아간 우완 구로다 히로키(41)다.

당시 구로다는 여러 메이저리그 구단이 제의한 연봉 1800만달러(약 200억원)를 뿌리치고 4억엔(약 43억원)에 친정팀 히로시마 도요카프와 계약했다. 직전 연도 소득분을 기준으로 내야 하는 2015년 소득세(약 97억)를 감안하면, 작년엔 오히려 '돈을 내고 뛰는' 형편이었다. 6억엔(65억원)으로 연봉이 오른 올해가 돼서야 순수입이 '흑자'로 전환됐다.

일본 야구 최고의‘의리남’구로다 히로키가 소속팀 히로시마 도요카프와 함께 리그 우승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구로다가 지난 7월 응원 막대를 든 홈팬들 앞에서 힘차게 공을 뿌리는 모습.

구로다가 돌아온 지 1년 반이 흐른 현재, 만년 하위팀이었던 도요카프가 기적의 드라마를 쓰고 있다. 히로시마는 9일 현재 81승47패2무로 2위 요미우리 자이언츠(65승59패3무)를 14경기 차로 제치고 센트럴리그 우승 '매직 넘버(자력 우승에 필요한 승수)'를 1까지 줄였다. 1991년 우승 이후 25년 만의 정규시즌 1위가 눈앞이다. 아사히신문은 "요즘 히로시마 도시 전체가 붉은색(도요카프의 팀 컬러)으로 물들었다"고 했다. 지역 은행에선 직원들이 도요카프 유니폼을 입고 업무를 본다.

지역 내 야구 시청률은 45.8%까지 치솟았고, 평균 관중은 구단 사상 최고치인 2만9800명을 기록 중이다. 우승 경제 효과가 3563억원이라는 추산도 나왔다.

기적을 만든 일등 공신은 구로다였다. 여전히 메이저리그에서 뛸 만한 실력이었던 그가 수백억 연봉을 포기한 것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작년엔 아쉽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리그 4위)했으나 '한번 해보자'는 선수들의 의욕은 올해 더욱 불타올랐다. 구로다는 자신의 20년 노하우를 전수하는 동시에 리그 평균자책점 7위(3.12)와 다승 8위(8승8패) 등을 기록하며 여전한 기량을 과시한다. 미·일 통산 200승도 돌파(일본 122승·미국 79승 등 201승)했다.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어 '있는 선수' 지키기도 버거운 도요카프는 센트럴리그에서 가장 오랜 기간 우승과 인연이 없었고, 가장 가난한 팀이다. 메인 스폰서인 지역기업 마쓰다로부터 최소한의 지원을 받아 구단을 운영한다. 구로다는 1997년 이 팀에서 프로에 데뷔했고,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을 예정이었던 2006년엔 "시장에서 내 가치를 알아보고 싶다"며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다녔다. 당시 그가 시즌 마지막으로 등판한 10월, 홈구장에 이런 내용의 대형 걸개가 걸렸다. "우리는 함께 싸워왔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중략)…그대가 눈물을 흘린다면 그대의 눈물이 되어주리." 이 문구를 목청껏 외치는 팬들을 보며 마음을 움직인 구로다는 이적을 포기하고 '히로시마 맨'을 선언한다. 훗날 일본 만화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이야기다.

1년 더 히로시마를 위해 공을 던진 그는 2007년 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며 "힘이 남아 있을 때 히로시마를 위해 다시 뛰겠다"고 약속했다. 33세부터 7년간 메이저리그에서 총 79승79패(평균자책점 3.45)를 올린 그는 노모·박찬호 이후 최고의 아시아 투수로 평가받았다. 구로다가 돌아오자 일본의 국민밴드 '비즈(B'z)'는 그를 위한 입장곡을 특별 제작했고, 2015년 복귀전을 치를 당시 팬들은 "우리들은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구로다는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겠다고 항상 의식하며 행동하는 것이 프로의 모습"이라며 "내가 이렇게 많은 연봉을 받는 것도 어린이와 팬 덕분"이라고 말한다. 팬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프로라는 것이다. 우승하면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구로다의 앞엔 이제 도요카프 유니폼을 입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할 일본의 '가을야구'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