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남자 2명 들어간다." "박찬호, 6번 룸 부킹 빨리 해달라잖아! 안 들려?"

지난 4일 새벽 2시 서울 영등포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일하고 있던 웨이터와 웨이터 보조 24명의 한쪽 귀에 꽂힌 수신기에서 이런 무전이 연달아 들렸다. '박찬호' 명찰을 가슴에 단 38세 웨이터가 입구로 달려나가 방금 들어온 20대 남자 2명에게 허리를 굽혔다. 박찬호는 그들을 1층 테이블로 안내해 주문을 받은 뒤 홀을 쓱 훑어보고 5초도 되지 않아 통로에 서 있던 여자 두 명의 팔을 잡아끌었다. 찡그린 표정으로 머뭇거리는 여자들의 귓가에 박찬호가 연신 뭐라고 속삭였다. 두 사람을 이른바 '부킹녀'로 룸에 데려가려는 찰나에 또 무전이 울렸다. "박찬호, 7번 앞(일곱째 열 앞쪽 테이블) 계산! 빨리!"

지난 8월 20일부터 3주에 걸쳐 주말 6일간 서울과 인천 나이트클럽 두 곳에서 웨이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밤새 술을 나르고 손님 비위 맞추는 웨이터들의 세계를 맛봤다. 이들은 술병을 가득 올린 무거운 '트레이(tray·쟁반)'를 들고 하루 10~12시간씩 취객들 심부름을 하며 서빙과 부킹을 한다. 몸과 마음이 쉽게 상하는 이 고된 일로 버는 돈은 초보일 경우 월 150만원가량.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호출 사이를 뛰어다니는 이들은 일이 익숙해지면 그 두 배를 벌 수 있고, 좀 더 큰돈을 쥐면 자기 사업을 하리라는 꿈을 품고 있다. 대개 30~40대들이 많지만 취업 안 되는 시대를 뚫고 나가려는 20대들도 간혹 눈에 띄는 일터다.

김성규 기자

웨이터들은 오후 5~6시에 출근해 이튿날 새벽 4~6시에 퇴근했다. 지명 손님을 받거나 웨이터를 지명하지 않는 손님의 경우 순번제로 배당받아 치르는 하루 손님이 적으면 10명, 많으면 50명 정도다. 손님이 몰리기 시작하는 밤 10시 이전에는 거리에서 명함을 돌리며 선전도 한다.

지난달 29일 새벽 영등포 나이트클럽 테이블에 앉은 여자 손님 옆에서 한 웨이터가 걸 그룹 춤을 췄다. 부킹을 거부하는 여자 손님을 달래려는 '애교 작전'이었다. 팔짱을 끼고 보던 여자는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웨이터의 손을 잡았다. 웨이터들은 손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했다. 담배 심부름부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달라' '양주 한 잔 원샷 해라'라는 요구도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남자 손님은 '형님'이라고 부른다. 바쁜 날엔 웨이터 한 명이 손님 10팀 이상을 한꺼번에 돌봐야 한다. 작년 동안 서울 강남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일했다는 '강호동'(22)은 "한마디로 아니꼽고 더러운 꼴은 다 본다"고 말했다.

지난 3일 밤 10시 나이트클럽에 출근해 웨이터 대기실에 들어가니 웨이터 보조 '변강쇠'(36)의 오른쪽 옆구리에 파스가 붙어 있었다. 그는 "출근할 때마다 파스를 붙인다"며 "커다란 과일 안주 접시와 술병 '트레이'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면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웨이터를 하겠다는 사람은 과거보다 크게 줄었다. 워낙 힘든 일인 데다가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댄스 클럽에 손님을 뺏겨 예전보다 벌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영등포 나이트클럽 총무는 "구인 카페에 글을 올려도 전화가 별로 오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인천에 있는 25테이블 규모의 작은 나이트클럽엔 연변 출신 박모(29)씨가 1년째 일하고 있었다. 박씨는 "공업 재료를 절단하는 공장에서 일했었는데 고향 식구들이 위험하다고 걱정해 웨이터로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웨이터 수입은 '봉사료'와 손님들로부터 직접 받는 '팁'으로 이뤄진다. 봉사료는 자기 손님이 계산한 금액의 20%다. 팁이 별로 나오지 않는 소규모 나이트클럽을 제외하고 대부분 기본급이 없다. 웨이터 일이 익숙해지면 월 300만원 정도 벌 수 있다. 한 15년 차 웨이터는 "4대보험 같은 건 없고, 일하다가 다치면 내 돈 내고 병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시급제(시간당 1만원)인 웨이터 보조는 팁을 받더라도 '형님'이라고 부르는 담당 웨이터에게 모두 줘야 했다. 인천에서 16시간 웨이터로, 서울에서 24시간 웨이터 보조로 일한 뒤 받은 돈은 총 36만원이었다.

주로 단시간에 목돈이 필요하거나 생활비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이 나이트클럽 문을 두드린다. '변강쇠'는 "사업을 하다가 가게를 접게 돼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서 4년간 일했다는 '슈퍼맨'(35)은 "음식점 낼 자본금을 뽑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조선족 박씨는 "한국에서 집을 사 정착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근무시간에는 너무 바빠 웨이터들끼리 개인적인 대화를 할 수 없었고 일이 끝나면 피곤해서 회식도 없었다.

웨이터들이 팁을 받는 요령은 다양했다. 손님이 병째 남긴 맥주를 다른 손님에게 공짜로 갖다주며 마치 주방에서 슬쩍해온 양 "지배인이 알면 죽는다"고 엄살을 부리거나, 홀에서 아무 여자나 손에 잡히는 대로 데려왔으면서 "룸에 계신 분을 어렵게 데려왔다"고 말한다.

'슈퍼맨'은 주말마다 발바닥이 붓는다고 했다. 그는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왔다갔다 하다 보면 발바닥이 팅팅 붓는다"며 "내 가게를 마련할 때까지 부기가 빠지지 않을 것 같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