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셔니스타들에게 트렌치코트는 영원한 노스탤지어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중절모에 트렌치코트를 걸쳤던 험프리 보가트의 패션은 남성들 가슴에 불을 지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과 조지 페퍼드의 폭우 속 격렬한 키스신보다 더 뇌리에 남은 건 그들이 입고 있던 트렌치코트였다. 최근 배우, 가수, 모델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면서 패셔니스타로 등극한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즐겨 입는 아이템도 트렌치코트다. 대충 걸쳐도, 단추를 풀거나 채워도, 깃을 세우거나 내려도, 심지어 허리띠를 아무렇게나 묶어도 분위기 있어 보이는 옷. 트렌치코트의 계절이 돌아왔다.

'셜록 홈스'부터 '센 언니'까지

올가을엔 유난히 현란하다. 기본은 가져오되 과감한 형태나 소재에 변화를 줬다. 트렌치코트의 대명사로 통하는 버버리에서는 호피 무늬·하트 무늬 등 한껏 멋을 낸 트렌치코트를 내놨다. 그중 셜록 홈스를 연상케 하는 케이프 스타일의 트렌치코트가 주목받는 '신상' 아이템이다. 망토처럼 두른 뒤 주머니처럼 뚫린 곳으로 팔을 내놓는 디자인. 샤넬·구찌·발렌시아가·셀린느 등에서도 '시선 강탈'할 만한 트렌치코트를 선보였다. 트위드 재킷이 시그니처 아이템인 샤넬은 판타지 트위드 소재의 트렌치코트를 출시했다. 발렌시아가는 뎀나 바잘리아를 새로운 아트 디렉터로 영입하며 사람의 움직임을 계산한 쿠튀르(맞춤복)적인 라인의 트렌치코트를 선보였다. '스윙 트렌치'는 기본 트렌치코트처럼 입을 수 있고, 어깨를 뒤로 젖혀 단추를 고정하면 '오프숄더 트렌치코트'로 파격 변신한다. 어린아이들이 놀 때 옷을 대충 걸쳐 입은 모습에서 착안한 디자인이란다. '센 언니' 스타일의 트렌치코트도 등장했다. 이자벨 마랑은 광택 나는 새빨간 트렌치코트가 눈길을 끈다. 에나멜 가죽처럼 보이지만 표면 특수가공한 면 100% 소재라는 게 반전이다. 셀린느는 파란색에 라벤더 빛이 감도는 오묘한 색상의 부드러운 양가죽으로 만든 트렌치코트를 선보였다. 패셔니스타들 사이에서 "요즘 미쳤다"는 말이 돌 정도로 내놓는 아이템마다 히트하는 구찌의 트렌치코트도 개성 만점이다. 빨간색 단추로 포인트를 준 체크무늬 트렌치코트로 팔 부분에 꽃문양 자수 장식을 넣었다.

올가을 트렌치코트 최강자는?

그렇다면 패션 전문가들은 올가을 어떤 트렌치코트를 최강자로 선택했을까? 국내 투톱 스타일리스트 한혜연과 정윤기는 셀린느의 양가죽 트렌치코트를 꼽았다. 한혜연은 미국 색채전문기업 '팬톤'이 올해의 트렌드 컬러로 선정한 '세레니티'와 잘 부합하는 색상을 선정 이유로 밝혔다. "셀린느 트렌치코트는 톤이 다운된 파란색이면서 라벤더 빛이 감도는 풍부한 색감으로 굉장히 우아하네요. 색이 어려워 보여도, 오히려 베이지·블랙·그레이 등 가을철 많이 입는 옷 색과 두루 어울리는 색이죠. 더구나 입었을 때 자연스럽게 몸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부드러운 소재라 우아해 보입니다. 체형이 통통하다면 소재가 딱딱하고 각진 스타일의 기본 트렌치코트보다는 부드러운 소재가 딱이니까요." 정윤기는 "매년 가을이면 입게 되는 트렌치코트지만, 가죽만큼 가을에 꼭 어울리는 소재도 없다"며 셀린느 가죽 트렌치코트를 극찬했다. "절도 있는 트렌치코트의 느낌과 고급 가죽의 은은한 광택을 동시에 느낄 수 있지요. 실크 소재의 정장 바지를 매치해 감도 높은 룩을 연출해보세요. 이때 정장 바지는 서로 다른 톤의 블루 컬러로 매치하고, 무채색의 롤넥 풀오버를 더한다면 스마트한 스타일링이 되죠."

패션 디자이너 김석원과 패셔니스타 방송인 김나영은 구찌의 체크 무늬 트렌치코트를 최고로 꼽았다. 김석원은 "전통적인 체크 패턴 위에 과감하고 컬러풀하게 시도한 디테일의 조화가 매력"이라고 평했다. "원색적인 컬러의 1970~ 80년대 빈티지 스타일 스타킹이나 구두, 머플러 등 자유롭게 매칭해도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요. 복고 패턴이 들어가면 더욱 좋겠죠."

김나영도 이번 가을 도전하고 싶은 트렌치코트로 구찌를 택했다. "빨간색 단추와 위트 있는 자수 장식이 어우러져 독특해요. 튀는 스타일의 트렌치코트가 오히려 연출하기 쉬워요. 그 자체로 패셔너블해 보이니까요."